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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하나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보물에 관한 숨겨진 단서에 대한 것이지요.
어때요, 궁금하지 않나요? 저는 방금 보물찾기본능(Treasure Hunt Instinct)을
일깨웠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나 있지요, 비밀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자 하는 욕망,
사라지고 숨겨진 것을 찾고, 퍼즐, 수수께끼, 또는 미스테리들을 푸는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보물찾기본능이야 말로 예술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오늘 저는 여러분께 현실에서의 보물찾기를 소개하려합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바로 튀어나올 법한 것이지요.
그것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궁전의 방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던 그림에 관한 것입니다.
그방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주도했던
두명의 예술가의 결투의 장소로 사용 되었습니다.
바로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숨겨진 비밀 단서와 잃어버린 보물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사라진 걸작입니다.
자, 제가 보물찾기본능에 대해 이야기할때는,
은유적인 보물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이 미스테리한 그림들의 상징은 무엇일까요?
오늘 저는 현실에서의 보물에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레오나르도 의해 그려진 그림, "앙기아리의 전투" 는
500 년 전에 소실되었죠.
저는 예술의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이자 픽션이나 논픽션을 다루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제가 소설이나 역사책들을 쓸때나
예술의 역사, 미술품 범죄, 또는 글쓰기를 강의 할때,
전 청취자들이나 독자들이 같이 즐길수 있게
퍼즐을 풀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분이 역사를 많은 조각들이 사라진
하나의 거대한 그림퍼즐로 상상해본다면,
역사학자들이 고문서들이나 오래된 물건들을 찾고
이 그림퍼즐의 누락된 조각들을 채워나갈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완성된 퍼즐의 모습에 대해서는 경험에서 부터의 추측을 해야하지요.
다빈치의 사라진 그림은 이 퍼즐의 큰 부분입니다.
예술의 세계에서, 다빈치의 잃어버린 작품을 찾는일은 마치 달위에 착륙을 하는 것과 같지요.
현존하는 다빈치의 그림은 총 22종 뿐이지만,
바로 이 작품이 23번째가 될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예술과 심미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발견과 동시에, 이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이 될것이며,
팔리게 되면, 100만 유로(15억원)보다 훨씬 더한 값어치가 나갈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또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사상가들중의 한명을 재조명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술가이자 과학자 였으며,
그는 근대적인 수술에서부터 기관총, 탱크, 헬기, 자전거등
이 모든 것들을 발명하였죠.
그래서 이 작품은 단지 예술에 관한것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쌀라 데이 칭케첸토 (Sala dei Cinquecento: 6세기 이탈리아의 대 응접실) 또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있는 베키오궁전의 500의 대광장이라는 장소입니다.
이것은 실로 거대한 방입니다. 아마도 축구장의 반 정도 만한 크기일 것 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조르조 바사리(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건축가,미술가)의 벽화들로 장식이 되어있죠.
바사리라는 인물이 다빈치의 사라진 작품을 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1505년에 다빈치는 하나의 전투 장면을 그려줄것을 의뢰받는데,
여기에 있는 이 방들의 벽들중 하나를 수놓은 "앙기아리의 전투"가 바로 그 것이지요.
다빈치는 그 그림을 시작은 하였으나 끝은 내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에 대해선 조금있다가 설명하도록 하지요.
미켈란젤로 역시 다른 전투 장면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게되는데
반대편 벽에 그려진 "카스치나의 전투"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전투 장면의 준비작업으로써 밑그림을 그리게되는데
실제로 작업을 시작하진 않았죠. 그리고 그가 변명하길
그가 작업하는 방의 벽면을 비추는 빛이
다빈치의 작업실을 비추는 빛만큼 좋지 못해 이 위대한 두 예술가의 결투에서
자신이 불리한 입장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1563년에 바사리가 이방을 리모델링하고 다시 설계하고 다시 벽면을 그려줄것을 의뢰 받게 되고,
그는 작업을 끝내게 되지만 그후, 다빈치의 그림은 더이상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저의 질문은, "그의 그림에 무슨일이 있어났을까요?"
바사리는 다빈치의 작품의 엄청난 팬이였으므로 그가 의도적으로
이 위대한 장인의 작품을 훼손하였으리라곤 생각해볼수없죠.
사실 바사리는 굉장히 흥미로운 사람입니다. 그는 16세기의 화가이자 건축가이지만,
그를 유명세에 올려놓은 것은 그가 쓴 한권의 책입니다.
그 책은 "가장 저명한 화가들, 조각가들과, 건축가들의 삶"이라는 책이고
그것은 1550년에 처음으로 편찬된 전기모음으로써
그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의 전기들이었죠.
그 책은 여전히 모든 예술 역사과목이나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과목을 듣는 학생들이 끊임없이 찾는 책이며,
폭넓게 영향력이 있는 책이죠.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들의 뒷 이야기를 배우게 됩니다.
사실 이러한 바사리가 고의적으로 다빈치의 작품을 훼손하였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죠, 그러면 무슨일이 있었을까요?
자, 벽화를 보존하기 위해
그 벽화앞에 가짜 벽을 만들고
수리를 하게끔 하는 선례는 분명히 존재 하지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다빈치의 숨겨진 벽화에 일어난 일일지도 모르죠.
1975년에, 원래 과학자였던 한 이탈리아의 예술 역사학자인
마우리조 세라치니는, 바로 제 다음순서에 여러분이 듣게 될 사람이기도 하고요,
지금 까지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던 사실을 얘기했죠.
이 벽화들로 둘러싸인 거대한 방 전체에는
그려진 단 두 단어들만이 있을 뿐입니다, "cerca trova"
이탈리아어로 "찾으라, 그러면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죠.
세라치니씨와 저 자신 그리고 다른 저명한 다빈치 학자들은
이것이 바사라에 의해 의도적으로 심어진 단서라고 믿습니다.
바로 그가 어디에 다빈치의 사라진 그림을 숨겼는지를 알려주는 단서이죠.
그 단어들이 세라치니씨로 하여금 보물 사냥의 본능(Treasure Hunt Instict)이라는 어휘의 씨가 심어지게 했죠.
그러나 이 단서를 눈치챈 사람은 500년의 세월동안 오직 그밖에 없었죠.
이것이 바로 그 전투 장면, "앙기아리의 전투"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직 루벤스(플랜더스의 화가)가 그린 사본을 통해서 알게 되죠.
그리고 그것은 다빈치의 그림이 그려진지 100년이나 지나서입니다.
아래, 여러분이 보시는 것은 "카스치나의 전투"의 준비단계의 그림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이 것을 그렸지만, 결국 온전한 작품은 그리지 않았죠.
자, 왜 다빈치는 이 그림을 끝내지 않았을까요?
글쎄요, 다빈치는 상상력에 있어선 너무나도 활발한 사람으로 유명했었죠.
예전에 그는 그의 유일한 후회가 그 자신이 단하나의 그림도 완성하지 못한 것 이라고 하였죠.
물론 조금의 과장이긴 하지만, 사실이기도 하죠.
그는 끊임없이 다른 작업들로 불려 갔었고
그리고 그 사실이 아마도 그가 이 작품을 포기한
이유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일기에 의하면
여기엔 더욱 더 신파적이고 기상학적인 이유가 있답니다.
1505년 6월 6일의 그의 일기에서 그가 말하길,
"내가 붓을 놓았을때,
날씨가 급격히 악화되었고, 종탑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작품의 예비단계인 밑그림이 찢어졌고,"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며 밤까지 무섭게 비가 쏟아졌다,"
"밖은 마치 밤처럼 어두워졌다."
자 이것이 바로 다빈치가 그림을 끝내지 못한것에 대한 그의 설명이죠.
조르조 바사리는 우리가 르네상스기의 예술가들을 이해하는데 참으로 핵심이자
그리고 다빈치의 잃어버린 그림을 찾는데 중요한 단서입니다.
바사리를 통해 우리는 16세기 르네상스의 가장 뛰어난 예술가들의 경쟁을 배우게 되고
그들중에 단연 으뜸이었던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에 대해 배우죠.
하지만 그시대엔 다른 경쟁자들도 분명히 존재하였죠.
이 시대의 4대 예술가들에 대해선 조금있다 짚고 넘어가기로 하죠.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작품들도 틀림없이 그들의 작품들이고요.
우리에겐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과 그의 다비드 석상이 있죠.
하지만 제가 여러분들께 다빈치와 레오나르도에 맞서
르네상스를 대표했던 예술가들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닌자 거북이"(1980년도에 유행했던 미국 만화)를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정답의 반밖에 맞추지 못하죠.
왜냐하면, 닌자 거북이들중 하나인 라파엘은 실제로 4명의 경쟁자들중 한명이지만
그러나 마지막 한명은 티치아노이거든요.
그리고 어떤 이유에선가 닌자 거북이의 창시자는
도나텔로가 더 나은 4번째 인물처럼 들리지만, 보세요.
사실 도나텔로는 이 네명의 경쟁자들보다 한세대를 훨씬 먼저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네명과 같은 부류에 넣기엔 무리가 있죠.
우리는 바사리를 통해서 이들 네명의 라이벌들에 관해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되죠.
예를 들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는 굉장히 재밌는 이야기가 담겨있죠.
사실 미켈란젤로는 그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죠.
그는 조각과 건축을 사랑하였고,
시인이자 고고학자였으며, 교황들의 유물을 책임지는 박물관의 전시 책임자였습니다.
어찌되었든, 그는 우연히 그림을 그리게 된거죠.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그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과학자였고, 대부분의 재산을 군대에서의 엔지니어로써
그리고 리라 다 브라초라는 현악기를 연주하며 벌어들였습니다.
그림은 사실 그의 우선순위가 아니었죠.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벽화를 그리는 일도 배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벽화 예술은 에그 템퍼라 기법 (계란 노른자와 물감을 섞는 방법)을 사용해
젖은 석고 벽면에 작업을 하는 전문적인 기술이 요구됩니다.
수백년간 지속되어온 이 기술은 반드시 훈련을 거쳐야 하지요.
미켈란젤로가 벽화예술에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아는 라파엘은
그를 골탕먹일 작정으로 이 기회를 사용하기로 결심하였고,
당시의 교황에게 미켈란젤로에게 천장을 그리는 일을 맡길 것을 설득하게 됩니다.
시스티나의 성당 천장의 벽화를 그리는 의뢰를 미켈란젤로에게 맡기면,
벽화예술에 아무런 조예와 관심이 없었었던 그가
결국 망신을 당하고, 라파엘 본인이 르네상스 로마의 최고의 화가가 될거라 믿었기 때문이죠.
여기엔 뒷 이야기가 있는데, 결국 어쩔수 없이 의뢰를 승낙한 미켈란젤로는
그 누구도 작업중인 벽화를 볼 수 없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의 벽화가 완성 되기전까지는 말이죠.
무슨 계획인가 궁금해진 라파엘은 시스티나 성당에 밤중에 잠입하게 되고,
교황도 마찬가지로 일의 진척이 궁금해진 나머지,
미켈란젤로가 천장밑 버팀대의 젤 윗쪽까지
올라가길 기다린 후에,
방으로 슬며시 들어가 보려 했지만, 그것을 발견한 미켈란젤로가
그에게 붓들을 집어던지며 큰 소리로 야단을 쳐서
교황을 방에서 쫓아냈다는 설화가 있지요. 그리고 이 이야기들이 바로
바사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고, 물론, 라파엘을 비꼬는 이야기긴 하지만,
핵심은 바로 이 시스티나 성당이 가장 유명한 벽화로 꼽힌다는 것입니다.
바로 전세계에서 말이죠.
자, 여기 미켈란젤로의 다른 작품들이 있습니다.
예술의 역사적인 측면에서, 미켈란젤로의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 한다면,
그의 독특한 예술세계가 후배들에 있어선 확고한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다는 것이죠. 16세기 중반의,
미켈란젤로의 추종자들은 마니에리스트라 불렸습니다.
그리고 이들이야 말로 그의 특색있는 예술 세계를 존경하고 흠모하는 사람들이죠.
바로 극적인 효과를 위해 의도적으로 신체를 줄인다거나 왜곡하는 점말이죠.
더욱이 미켈란젤로와 다빈치는 인체의 내부를
들여다 본 최초의 예술가들이였습니다.
그들은 밤마다 불법으로 시체들을 파헤쳐
피렌체의 산토 스피릿토 성당의 지하실에서 그들을 해부하며 인체의 근육을 공부하였죠.
인체 과학에 관심이 있던 다빈치와는 달리,
미켈란젤로는 인체의 생김새에 매료되었고,
또한 극적인 효과를 내기위해 의도적으로 그것을 왜곡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다빈치의 작품들입니다. 그는 예술 그자체보다는
그뒤에 숨겨진 기술과 과학적인 측면에 더욱 관심을 가졌죠.
그는 자신만의 미술 운동을 시작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그가 세가지의 테크닉을 개발하였고
그의 작품들 속에서 점차 유명해졌다는 점을 알아 낼수 있습니다.
그들 중 하나는 "색 투시" 또는 대기원근법이라하죠.
자 여러분이 먼 거리를 보게되면,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물체들이
더욱 흐릿하거나 불투명해보이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실제로 대기의 층들을 통해서 먼 거리를 보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다빈치는 바로 이 점을 예술에 접목시킨 최초의 화가이기도 합니다.
바로 여기의 배경에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또한 그는 스프마토라는 기법을 개발하였는데,
마른 붓과 반쯤 마른 물감으로 의도적으로 선을 흐리게 만드는 것으로
신비스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뿌옇고 탁한 효과를 표현하였죠.
마지막으로 키아로스쿠로기법 (명암 대비)입니다.
이 기법은 어둠속에서 빛이 흘러 나오게끔 하는 방법으로
여러분이 이 강당에서 모든 조명을 꺼버린다고 잠시나마
상상해보신다면,
오직 저를 비추는 하나의 조명만 남기고 말이죠,
그러면 매우 키아로스쿠로한 장면이 연출되겠죠.
반대로 이 강당에 있는 모든 조명이 다 켜져있다면 어떨까요?
바로 그 전반 확산 조명이야 말로
다빈치이전의 대부분의 그림들에 조명을 넣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극적인 스포트라이팅 (국부조명법)은 다빈치가 개발하고
카라바조라는 화가가 절정에 이르게 합니다. 자 여기에 그의 작품중 하나의 예가 있고
다빈치의 시대보다 100년정도 이후의 일이죠.
자, 여러분 때때로
다빈치같은 유명한 화가의 사라진 작품이 재조명될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알고있던 이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오직 삼분의 일정도만이 현존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지도 모르죠.
즉, 이러한 위대한 예술가들 각각의 전작품들중 삼분의 이는 소재가 불명하죠.
실제로 이들은 사라졌거나 훼손되었거나 아니면 단지 다른 것으로 오인되고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단순히 그것들이 어딨는지를 모르죠.
그러나 사라진 것들에 대한 이러한 연구는 혹시 찾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실제로, 지난 몇년간 다빈치의 작품들중 사라진 두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자 여기 "살바토르 문디" (구세주 예수를 그린 다빈치의 작품)가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다빈치의 위대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그림은
불과 몇년 전에 발견되었죠. 그러나 여기 옆에 있는 "라 벨라 프린치페사" (아름다운 공주)라는 작품은
불과 몇년전에 발견되긴 하였으나 다빈치 학자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하죠.
그들중 반은 이것이 바로 사라진 원작품이라 하고,
나머지 반은 이것이 복제품이라 생각합니다.
미켈란젤로의 때때로 발견되는 작품들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최근에 재조명된 두작품은 살짝 의심스럽죠. 두작품 모두 말이에요.
자, 여기 미켈란젤로가 그린 실제의 밑그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에 발견된 그림이고요.
그리고 이건 분명 저 밑그림을 기초한 작품이군요.
이 작품의 소유자는 이것이 다빈치의 그림이라고 믿지만,
다빈치의 학자중 이것에 동의하는 사람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건 그저 저 밑그림을 보고 그린
평범해보이는 복제품으로 보이고, 그의 실제 작품으론 보이지 않죠.
우리는 그가 실제로 밑그림의 완성본을 그렸을거라고 추정하지만, 아마도 그건 사라졌겠죠.
자, 아래에,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상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정부가 4백만 유로(60억원)을 주고 사들인 이 미켈란젤로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작품 역시도 학자들 사이에서는 진품이 아니라고 생각되죠.
그럼, 어떻게 그들이 진품인지를 결정하냐구요?
글쎄요, 하나의 방법은 바사리에 의해 쓰여진 미켈란젤로의 삶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그가 단 한번도 목재 조각을 한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되며,
이 그림과 같은 십자가상 역시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기록에서 부터 알게됩니다.
결국 이 모든 주장들은 단순한 희망사항일지도 모르죠.
따라서, 바사리야말로 예술의 역사에서의 미스테리들을 푸는 중요한 열쇠인거죠.
그리고 우리는 다시 바사리와 Sala dei Cinquecento (16세기 이탈리아의 대 응접실)로 돌아옵니다.
2006년도에, "cerca trova" 이라는 표지가 쓰여진 벽면의 뒤에서만
4cm정도의 틈이 발견 되었죠.
그리고 그 뒤에 숨겨져 있던, 가짜 벽이 발견되었습니다.
2011년도에 바사리의 외부 벽화를 뚫어 몇몇의 구멍을 내어
그 벽면의 뒤에서 부터 샘플을 채집하는 시도가 있었고
채집된 물감은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사용된 것과 매우 흡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빈치의 "앙기아리의 전투"가 그 뒤에 숨겨져 있는건 거의 확실합니다.
그러나 발굴작업은 몇몇 예술사 학자들의
탄원서명서에 막혀 중단되고 말았죠.
왜냐면 그들은 우리가 다빈치의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의도적으로 바사라의
귀중한 벽화를 훼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주장합니다.
그들은 또한 사라진 다빈치의 작품이 어떤 상태에 놓여있을지 모른다고 강조하죠.
왜냐하면 그것은 통풍이 안되는 무덤에 500년이 넘게 갇혀있었거나
아니면 단지 물감색소의 부스러기 일수도 있고요.
결국 벽면뒤를 들여다보아도 실망적인 결과일수도 있다는 주장이었죠.
그러나 저는 이 탄원서에 반대를 던지고 싶군요.
제 생각엔 바사리 자신은 그의 벽면의 일부를 제거해 다빈치의 작품을 찾는일을
오히려 웃으며 격려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쨋든, 바로 바사리 본인이 그것을 숨겼고
우리가 그것을 찾도록 "cerca trova"라는 단서를 남겼기 때문이죠.
바로 그 두단어가 우리안의 보물찾기 본능을 일깨웠고,
비록 이것을 알아채기까지 500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제 생각엔 바사리는 진정 우리가 자신의 벽화를 손상해서라도
사라진 다빈치의 그림을 찾아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결국,
단서를 심어놓고 찾아주기 바란 것도 그이기 때문이죠.
바로, "찾아라 그러면 발견하게 될것이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