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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캔 경이 아닌 걸 아실 겁니다.
비록 머리가 별로 없는 건 비슷하지만요.
따님은 이곳에 계십니다만
무대로 불러내 창피하게 하진 않을 겁니다.
그건 공정하지 않을테니까요.
대신 제가 켄에 대해서 말씀 드리죠.
아쉽지만 저희와 이곳에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모르실 수도 있는데 LA에 살고 있으세요.
이분이 꼭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06년, 2010년 TED 강연 중 가장 주목 받은 연사이시니까요.
150국가에서 2억 번이나 그의 강연을 봤습니다.
켄 경이 이 행사의 시작을 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켄경은 이 행사 조직에도 참여하셔서
정말 중요한 분이십니다.
켄 로빈슨 경을 소개합니다.
[박수]
반갑습니다. TEDx런던과 교육혁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켄 로빈슨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라운드하우스에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꼭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라운드하우스와 런던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로스엔젤레스에 있어야 했어요.
좋은 점도 있기도 하지만요.
이번 행사는 TEDx런던이 조직했고,
준비한 모든 사람들께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은데,
지난 몇 달간 정말 많은 노력하셨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독립적으로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덧붙이고 싶은데요,
이번 행사가 어느 정도는
롱비치 TED의 제 두 번째 강연의 영향을 받았죠.
처음 2006년 TED에서 창의성에 대해 강연했습니다.
크리스 앤더슨이 요청해 4년 후 다시 강연을 했죠.
속편이라고 생각했고
두배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죠.
교육을 혁신시키기 위해서는 말이죠.
오늘은 그 아이디어들을 발전시킬 기회입니다.
오늘 들으실 강연과
세션 사이사이에 참여하실 토론을 통해서요.
방향에 대해서만 몇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토론되어야 할 내용과 교육 혁명이 중요한 이유와
애초에 교육 혁명이 왜 필요했는지 말이죠.
이 토론이 라운드하우스에서 열리는 건 적절합니다.
처음 오신 분을 위해 말씀 드리죠.
이곳은 문화 정책과 운동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널드 웨스커가 창설한 '센터 42'의 중심이었는데,
노동조합이 제기한 안건을 따서 이름지었죠.
문화적 권리와 공평성을 주장한 거였죠.
60년대와 70년대에 많은 공연을 했고,
60년대에는 많이 봤습니다. 부연적으로 말하면, 70년대에
그 중 피터 브룩이 연출한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다시 언급 드리도록 하죠,
제 이야기를 끝낼 때쯤요.
먼저 강연자들께 감사드리고 그분들을 소개해 드리고 싶군요.
그 분들의 업적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곧 강연하실 쥬드 켈리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저와 함께 일해 왔고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감탄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10년 전 영국정부 보고서를 함께 작성한 적이 있는데
"모두의 미래: 창의, 문화, 그리고 교육" 이었죠.
저와 비슷하게 쥬드의 작업은
전문 예술과 교육 분야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죠.
따라서 오늘 토론에 적합한 분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알려드리고 싶군요.
또한 전문가분들도 많이 앉아 계시고요.
혁명이 필요한 이유는
정치인들이 종종 잘못 쓰는 구절에 잘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교육의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지 문제는 많은 정치인들이
"기본으로 돌아가자"라고 주장할 때
단순히 과목만을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들이 학교 다니던 시절의 과목 그룹들이죠.
특히 정치인들이 강조하는 것은
읽고 쓰기, 산술, 과학이죠.
물론 상당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교육의 기본은 몇몇 과목이 아니라는 겁니다.
교육의 기본은 그 근본 목적에 있습니다.
그걸 잘 새겨 두세요.
오늘 있을 대화, 토론과 이슈 속에서
이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제 소견으로는 세 가지 기본이 있습니다.
딱히 순서가 중요하지는 않지만,
이 순서로 말씀 드리는데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경제입니다.
교육은 큰 역할을 합니다.
경제 성장, 발전시키고 지속 가능케 하죠.
경제를 제외하고 교육을 논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세상과 고립돼 현실을 모르는 것이죠.
문제는 지금 발생되고 있는 경제는
예전과 다르다는 겁니다.
제가 학교 다니던 때와 비교해도 그렇고
공교육이 시작되었을 때와도 확연히 다릅니다.
21세기 경제는 능력 개발을 요구하죠.
창의력, 혁신과 같은 다양한 인간의 재능을 말이죠.
지금 교육 시스템은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죠.
따라서 교육 혁명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경제의 목적을 충족 시키기 위함입니다.
두 번째는 문화적인 것입니다.
교육의 근본 기능은
학생이 몇 살 이던지 간에
자신의 문화적 배경과
역사와 전통,
자신의 정체성과 형성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에
용기를 북돋아 주는 동등한 책임감이 필요하죠.
지금 세계가 맞닥뜨린 가장 큰 문제는
환경적인 부분이기도 하지만 문화적인 부분이기도 하죠.
세계의 극심한 갈등은
문화적 불신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니 교육에서 문화적 역할은 근본적이고,
교육과정에 대한 실제적인 함축성이 있는거죠.
세 번째로, 제가 이걸 언급하는 이유는, 제게,
제게 중요한 교육과 관련된 모든 것을 연결하기 때문인데,
교육에서, 우리가 미래를 건설해 나감에 따라서요-
세번째는 바로 개인입니다.
교육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겁니다.
개개인을 위한 겁니다.
그들의 희망과 열망을 위한 것이고
재능, 능력, 열정을 위한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퇴하고,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긴 하지만 교육에서 분리되어 있죠.
그렇게 하는 데에는 다 개인적인 이유가 있죠.
교육은 기계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흥미를 가진 학생들이 적절하게 참여되는 것에 의존하는 과정이죠.
제가 보는 혁신을 요구하는 근간에는,
교육의 개인화의 필요성이 있죠.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특히 지난 10년에서 15년 동안
교육이 점점 더 비개인화되었기 때문이죠.
정부가 교육을 표준화하면 할 수록,
더욱 더 동일성이라는 편협한 관점으로 몰아가면서
비개인화됩니다.
따라서 우선 순위를 바꾸는 것이 혁신의 핵심에 있다고 봅니다.
학생과 교사에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앞서 피터 브룩을 언급했었죠. 70년대 라운드하우스에서 가곤 했는데
그때 피터 브룩 작품을 종종 봤습니다.
혹시 모르실까 봐서 말씀드립니다만 그는 지금도 연극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국립 극장과 작업했었고,
로열셰익스피어극장에서 일한 후
파리로 옮겨가 극 연구를 위한 센터를 설립했습니다.
라운드 하우스에서 "더 이크(The IK)"를 봤는데
70년대 한창 혁신의 중심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몇 년 전, "비어 있는 공간"이란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그는 극장을 만드는 것에 관한 그의 관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가장 강력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극장을 말이죠.
그는 많은 극장경험이
끝내주게 강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죠;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이긴 하나, 시간은 어차피 지나가니까요.
하지만 극장에는 변화의 잠재력이 있어요.
그의 관심은 잠재력의 통로를 여는 겁니다.
그가 말하길, 극장이 가장 강력한 극장이 되려면,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초점을 두여야 한다고 했죠.
그리고 한 가지 생각 실험을 제안했죠.
"평범한 연극에서 없애버려도
여전히 극장이 되게 하려면 뭘 없애겠습니까?"
이렇게 함으로써 가장 단순화된 극장에 다가갈 수 있겠죠.
"커튼을 없애 볼 수 있죠."
"대본도 없앨 수 있죠." 대본이 없는 극장도 많으니까요.
"감독도 뺄 수 있죠." 감독없는 극장도 많았으니까요.
"조명도 없앨 수 있죠. 볼 수만 있다면요."
"안 보여도 없애 볼 수 있죠."
"무대 담당자도 뺄 수 있고,
사실 건물도 없어도 되죠."
그는 "이 모든 것이 극장의 필요조건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연극에 필요한 모든 것은
어떤 공간에 있는 배우와 지켜보는 관객일 뿐."
"단지 한 사람의 관객과 배우라도 그걸로 된 것이다."
"배우가 연기하고,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면
그 관계가 바로 극장이다."
"진정 영향력있는 극장을 원한다면
그 관계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 관계가 최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굳이 무언가 덧붙일 필요가 없고,"
"방해가 된다면, 없애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결국 교육에서 논의해야 하는 건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입니다.
배우는 사람과 그것을 돕는 사람
물론 때로는 자율학습일 수도 있죠.
중요한 것은 그 관계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가 애매모호해지고,
어떤 면에서는 뒤덮여서 흔적도 없어져 버렸다고 할 수 있죠.
여러 가지 방해 때문이죠. 때론 정부 정책 때문에
학습과정에는 도움도 되지 않는 평가 제도 때문에,
때로는 교섭권, 충성심, 도시 건축법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죠.
이건 아주 오래된 그림이
층층이 쌓인 광택제에 더 이상 보이지 않은 것과 같죠.
우습게도 사람들은 하루 종일
교육에 대해 논쟁할 수 있지만 정작 학습은 언급하지 않죠.
따라서 제가 주장하는 교육 혁명은
급진적인 헌신이 필요로 합니다.
학습을 어떻게 해서든 개선하겠다는 의지말입니다.
교육과정 자체가 아니라 교육의 자질에 관한 것입니다.
교육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것을 관련 지어 볼 수 있습니다만,
배움이 깊어지거나 개선되지 않는다면
물론 개인에게 맞추면서 말이죠.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제 핵심 원칙을 정리하죠.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서
첫 번째, 교육은 개인화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만의 흥미와 재능의 메뉴가 있지요.
교육은 그것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교사의 창의성을 위한 동기부여와 기회에 관한 것이여야 합니다.
교수는 예술 행위입니다. 단순히 지식을 넘겨주는 것이 아니죠.
훌륭한 교사는 교재를 조율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상상을 불어 넣고
학생들의 창의력이 깨어날 수 있도록 하죠.
두 번째, 맞춤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학생들이 어디서 배우던지 그들을 위한 교육 시스템이여야 합니다.
의회 건물 의원실도 아니고,
평가 위원회 회의실도 아니고,
학생이 있는 학교와 배움 공동체에 교육이 있는 겁니다.
그들이 있어야 시스템이 있는 겁니다.
따라서, 맟춤교육으로 그 학생들에게로, 이 장소로,
이 사람들의 필요와 이러한 공동체로 하는것은 완전히 필수적이죠.
또 하나 중요한 원칙은 다양성이라고 봅니다.
현재 표준화 정책은 다양성의 원칙에 위반됩니다.
인간의 삶을 번성하게 것이 다양성인데도 말입니다.
만일 당신이 부모님이거나 누군가의 형제자매이고,
아이들이나 몇명의 형제자매가 있다면,
장담하건데,
둘 이상 아이가 있거나 형제자매가 있다면, 제가 장담하건데
서로 완전히 다릅니다. 그렇지 않나요?
절대 혼동하지 않으시죠?
"네가 누구였더라? 계속 헤깔린단 말이지."
선천적으로 인간의 삶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학교 구조에서도 이부분을 충분히 인정해줘야 하는데
그러는 대신 획일화된 프로그램을 선호하곤 하죠.
마지막 원칙은 파트너쉽입니다.
학교 건물 안에서만 교육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훌륭한 기관도 함께 할 수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우스뱅크 센터,
라운드하우스, 훌륭한 박물관,
유용한 과학 기관도 있죠.
더 넓게는 지역 공동체와 진정으로 함께 할 수 있어야죠 .
이 원칙들이 다양한 논쟁의 쟁점을 제공할 거라고 봅니다.
교육과정과 그 균형에 대해서 말이죠.
생각만 해도 간담이 서늘합니다.
국가 교육 제도에 대해 심사숙고한다면서
예술의 중요성을 과학과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말이죠.
인문학, 체육과 읽고 쓰기, 산술의 중요성도 달리 생각하고요.
따라서 교육학에 대해서도 논의해 볼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이와 더 나은 교수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할지 말이죠.
평가와도 연관이 있죠.
교육구조도 마찬가지고요.
제 생각에 오늘 우리가 논의해야 하는 것은
공식적인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홈스쿨링에 대해서도,
학습공동체가 형성되는다양한 방법과
내부적으로 어떻게 효과적인 구조를 만들어가는지에 대해서입니다.
궁극적으로 오늘 토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건
21세기의 시대적 요구를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는가입니다.
TEDx가 이 주제를 채택한 것이 기쁘고
여러분이 참여할 수 있어 대단히 기쁩니다.
오늘 토론 결과와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하겠습니다.
뜻 깊은 토론이 되시길 바랍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