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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한참 설리 울 제 또 한 군사 내달으며,
“이애, 네 설움 들어 보니 나와 똑같은 연처지정이다마는,네 설움 들여놓고 내 설움 좀 들어 보아라.
내 설움은 언문 잔주에도 없고, 예기춘추에도 없고, 군중에도 없는 별별설움이다.”
“그 설움 대단하다. 어디,하여라. 들어보자.”
“여봐라, 군사들아. 이 내 설움을 들어라.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부모님의 덕택으로 열일곱 장가들어, 스물다 섯 상처하고,
서른다섯 간신히 구혼하여 사주단자 보낸 후,택일 기별이 왔더구나.
일습기재차릴 적에 장풍헌네 비루먹은 말과 이좌수댁 좀안장,박도령 쌍언청이,
공도령 안판낙포 두 쌍으로 중시 세우고,
정동장 함진애비,집안 종 외눈퉁이,
전동다리꾀수아비,외삼촌 상객으로 꺼멍 암소 안장 지어 투덕투덕 건너갈 제,
사모품대 능라호사 호기 있게 건너가,초례청에 전안하고, 대례청 대례하고,
신부방으로 들어가 차담을 든든히 먹은 후에, 일락함지 해가 지니
저녁밥 갖은 반상 싫도록먹은후에,담배 한대를 얼른 피고 가만히 앉었으니,
어따, 우리집 마누라가 들오는데, 옆눈지어 살펴보니 명조가 둥둥 뜨고 영풍이 깃들었다.
상하 한 벌을 훑어보니, 머리 위에 화관이요, 몸에는 원삼이라.
외삼촌댁 처남의 댁이 신부를 옹위하여 옆 밀거니, 등 밀거니 ‘가자 가자, 어서 가자.’ 방으로 들어와,
병풍 뒤에 앉혀놓고 내 나가듯 다 나가고 신부 혼자 앉았기에, 곰곰 앉아 생각하니,
옛 노인 하신 말씀 첫날밤 신랑이 신부 손길을 먼저 잡으면은 공방 수가 든다기로,
놀래잖게 뒤로 가만히 돌아가 신부 허리를 넌짓 안고, 화관 원삼 훨훨 벗겨 병풍에 걸어 놓고,
나도 훨훨 벗은 후에 에후리쳐 보듬어 안고 정담을 하랴 할 제,
뜻밖에 웨는 소리,
‘위국땅 백성들아, 적벽강으로 싸움 가자. 나오 너라!’
부르는 소리 산천이 진동하고,
저기 있는 저 군사가 우루루루루 달려들어,
군복을 입히거니, 전립을 씌우거니,
등 밀거니, 옆 밀거니 덜미치고 나올 적에,
어따, 우리 마누라가 첫날밤 무슨 정이 그다지 많이 들었는지, 우루루루 달려들어 나의 손목 부여잡고,
‘아이고, 가군.나는, 나는 어쩌라고 이 지경이 웬일이오?’ 떨치고 나왔으나
언제 다시 고향에 돌아가 그립던 아내 손길을 잡고 만단정회를 풀어 볼거나? 아이고, 아이고, 설운지고.”
여러 군사 나앉으며, “네 설움 들어 보니, 위부모보처자라 하였는데 부모 생각 아니하 고, 처만 생각하니 음남의 아들놈이로고.”
이 놈 눈 흘기며 장막 밖으로 나가면서 “저희놈들은 정남 정녀의 덧붙이기 아들놈인가?”
또 한 군사 나오는데, 키는 작달막하고, 수염은 우무가사리같고, 코는 무덤같이 생긴 놈이 조그마한 착도 하나를 들고 외치고 나오 는데, 호걸제였다.
“너희 울 제 좀놈이라. 너희 울 제 좀놈이라.
위국자는 불고가라 옛글에도 있거니와,
남아하필연처자리오?막향강촌노장년하소.
우리 몸이 군사 되어 전장에 나왔다가,공명도 못 이루고 속절없이 돌아가면 부끄럽지 아니하뇨?
요 내 심중 평생 소원, 요하 삼척 드는 칼로 오한 양 진 장수 머리를 쟁그렁청 베어 들고 본국으로 돌아가면,
부모형제 처자권솔 원근친척 반겨 나와, ‘반갑구나,반가워. 천리 전장갔던 낭군 살아오니 반가워.’
서로 서로 반길 적에 그 아니 좋더란 말이냐? 우지 말라면 우지 마. 우지 말라, 우지를 마라. 군사들아, 우지 마라.”
여러 군사들이 이 말 듣더니, “독불장군이로구나. 너 혼자 충신이라. 네 진정 그럴진대 항도령이라 불러 주마.”
또 한 군사가 내달으며, “우리가 전장에 나왔으니 싸움타령이나 좀 모두 들어보소.” 싸움타령을 하는데,
습용간과 헌원씨 여염제로 판천싸움,능작대무 치우작란 사로잡힌 탁록싸움,
주나라 쇠한 천지 분분하다 춘추싸움, 위복진황 늙은 후의 투식산동 육국싸움,
봉기제장 요란하다 팔년풍진 초한싸움,
태공 여후 잡히겄다 서북대풍 수수싸움,
마상천하 하였구나 한 유방의 지혜싸움,
칠십여후들 혼이 없다 항도령의 우벽싸움,
통일천하 언제 할꼬? 위ᆞ한ᆞ오의 삼국싸움,
동남풍이 훨훨 불며 위태롭다 적벽싸움,
공성신퇴 가고지고.” “에, 아서라, 싸움타령, 가슴 끔적 기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