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p:
Highlight text to annotate it
X
크래쉬코스 철학은 스퀘어스페이스에 해 제공됩니다.
스퀘어스페이스: 여러분의 열정을 전세계와 공유하세요.
지난 두 시간 동안엔 철학자들의 추론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하니,
이제 실제로 철학을 해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네요.
철학적 사유가 지닌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무엇이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이 있으니, 이를 받아들일 태세를 늘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현재로선 분명해 보이는 사실이라 해도, 언제든 그다지 사실적이지 않다고 밝혀질 수 있거든요.
이러한 철학적 주제를 추구하다 보면 한층 더 주눅들기 마련인데요 - 진짜 사실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사실로 믿던 것을 거부하고, 양자 사이의 차이점을 알아낼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요.
다행히 현실의 본성을 찾아가는 우리들의 여정에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정말로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옵니다.
물론 우리를 다른 현실로 데려다 줄 실력을 갖춘 배우들은 많다고 항변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도로 드린 말씀은 아니고요.
'인셉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있잖아요, 왜, 레오가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도둑역할을 맡아서
그들의 꿈속으로 침입해 들어가는 영화요.
최고경영자만이 아는 그룹의 비밀이나, 국가원수에게서 군사기밀을 빼내고 싶다면, 아주 유용한 능력이겠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레오의 팀원 중 일부가 서로 다른 두 꿈을
같은 꿈이라 혼동하거나, 꿈과 현실을 분간하는데에 어려움을 겪게 되죠.
영화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꿈속에 갇혀 살면서, 자기가 현실에 살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나와요.
그들에겐 꾸고 있는 꿈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고,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인거죠.
하지만 꿈밖에 서있는 사람들, 즉 그들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볼 때엔,
그들이 꿈속에서 추구하는 현실은 그저 거짓에 불과한거죠.
영화 소재로서는 정말 좋은 전제죠 - 이거 절대 왕스포 아닙니다. 알고 봐도
볼만할 거에요. 이 애기를 왜 했냐하면, 이와 같은 개념이 사실 지난 수천년 동안 .존재해왔기 때문입니다.
인셉션이 제기하는 문제는 서양철학의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간 시대로부터
많은 철학자들을 괴롭혀 왔거든요.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실재가 아닐 가능성이 정말로 있는 걸까요?
레오나르도 드카프리오가 우리를 이러한 주제로 안내하기 이전에, 플라톤이 있었습니다.
[테마 음악]
약 2400년 쯤 전에 플라톤은 명저인 '국가"를 저술하면서, 그 속에서
실재의 본성에 관해 그의 이전이나 이후의 어떤 철학자보다도 잘 기술해 놓았습니다.
그는 캄캄한 동굴에서 태어나 평생 사슬에 묶인 채 빈 벽만 바라보고 사는 죄수를 비유로 이를 설명합니다.
모든 사람들과 사물이 죄수의 뒤에서 지나가면, 그들 뒤에서 타고 있는 불길이 그 그림자를
죄수들 앞에 있는 벽 위에 비추어 줍니다.
죄수들이 볼 수 있는 것이 오직 그 그림자 뿐이다보니, 결국 그들은 그림자를 현실이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이제 일분 동안만 시간을 내서 상상해 보세요. '만약 지금까지 그림자만 보고 살아왔다면,
눈에 보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림자 외에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 수 없겠죠.
3D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할 거고요.
죄수들은 이렇게 평생 동안 그림자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살다가, 어느날 그들 중 하나가
사슬을 풀고 달아나, 태양빛 속으로 기어나갑니다.
평생 불길만이 비추던 어둠속에서 살아 온터라, 태양을 보자마자 처음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차츰 그는 동굴 밖의 사물이 한때 현실이라 알고 있던 그림자보다 훨씬 더
실재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 사물은 실체를 가졌고, 별도의 차원 하나를 더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 때 기분이 어땠을까요? 여러분이 방금 전까지 믿고 있던 모든 것이
단지 실재하는 것의 희미한 윤곽에 불과하단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말이죠.
영화 인셉션에 설정된 세상에서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현실에 다양한 층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 이상 기존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그러한 경혐에 취해 흥분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플라톤이 말한, 탈출한 죄수도 그랬습니다.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알게 된 경이로운 소식을 전하려 다시 동굴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가 예상했던 대로 대화가 진전되지는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내용을 들려주면 친구들은 놀라면서, 그가 돌아가기를 갈망할 때
합류하기를 원할 될 거라고 예상했죠.
하지만 그들은 그들 미친 사람 취급했어요. 그들이 볼 때엔, 그가 무슨 "더 높은 현실'이라는 것에 대해
주절거리고 있는 것 같은 데, 그들로선 듣도 보도 못한, 아무런 근거가 없는 내용이었거든요.
설상가상으로, 햇빛의 세계에 있다가 다시 횃불이 비치는 동굴로 돌아오다보니
그는 또다시 일시적으로 앞이 않보이게 됩니다.
그러니 친구들이 볼 때엔, 그가 다녀 온 바깥 세상이 그에게 해를 입힌 꼴이 셈이죠.
이제는 한 때 그의 세상 전체가 되었던 그림자마저 볼 수 없는 상태가 되버리고 말았으니까요.
사실, 플라톤이나 크리스토퍼 놀란처럼 거창한 이야기를 통해야만 이런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 당시에 별 충격을 받지 않아서 그렇지, 여러분들도 직접 이런 현실적 괴리감을 겪어 본 적이 있을 테니까요.
예를 들어,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테디베어 기억나세요?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여러분들에겐 그 곰인형이 곰이라는 사물의 개념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매개물이었음과 동시에, 유일한 이해 수단이었죠.
그러다 어느 날, 동물원이나 야생동물 보호소, 혹은 국립 공원에 갔다가, 실제 곰을 보게 되죠.
그리고는 여러분이 예전에 알고 있던 곰은 현실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이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되죠.
실제 곰에겐 단추로 된 눈도 없고, 실로 된 미소짓는 입도 없고요. 폭신폭신하지도 않고, 껴앉을 수도 없죠.
어린 시절을 함께 해오며, 껴앉을 때 포근했던 곰이 실제 곰의 모습을 단지 흉내만 낸
그림자에 불과했던 거에요.
이제 좀 더 어른스러운 예를 살펴 보자구요.
가령, 여러분이 십대 때 친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이성의 매력에 눈을 뜬 경우라고 가정해 보죠.
아마 다른 친구들은 아직 보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것 같은
흥분을 느꼈겠죠.
그러면 친구들에게 설명하려 노력하겠죠.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게 어떤 기분인지?
허나 친구들은 여러분이 미쳤다고 생각할 겁니다. 물론 여러분도 친구들에 대해서 그렇게 느끼겠죠.
우리 가련한 주인공 역시 동굴에 다시 찾아 갔을 때 바로 그런 일을 겪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플라톤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가 뭘까요?
단지 실제 곰을 보았을 때나, 남자애들이 더이상 과거에 알고 있던 애들이 아니라는
가벼운 깨달음을 말하는 데서 그치는 건 아니죠. 그 이상의 의미가 있거든요.
플라톤은 모든 인간이, 바로 지금, 동굴에 갇힌 죄수의 처지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싶은 겁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단지, 궁극적인 실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이야기 속의 남자가 그림자를 실제사물로 착각했던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동굴에 갇혀 있는 처지라는 거죠.
이야기 속의 남자가 그림자를 실제사물로 착각했던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동굴에 갇혀 있는 처지라는 거죠.
하지만 정작 큰 실수는, 그림자를 일상 세계의 물질적 사물로 착각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일상 세계에 속한 물질적 사물이 가장 확실하게 실제하는 사물이라 생각하는 겁니다.
플라톤은 가장 확실한 실재처럼 보이는 물리적 세계가 더 높은 수준의 진실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충격 받으신 분들은, 한 때 절대적으로 믿었다가 나중에 완전히 잘못알았다고 깨달았던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해 보세요.
가령, 지구의 형체가 그랬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란 생각도 그랬고요.
헤로인이나 담배나 엽절단수술이 인체에 이롭다고 믿었던 사례도 있고요.
한때 사실로 여겨졌던 이러한 믿음이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밝혀졌잖아요.
따라서 가볍게 들리는 동굴 이야기에는 사실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플라톤은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라고 촉구하고 있어요..
아울러, 철학과 관련해 한 말씀 드리자면, 철학은 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항상 지녀왔던 믿음 중에서 그렇게 많은 부분이 실제와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게 불편할 수도 있죠.
잠시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것처럼 느낄 수도 있고요.
설령 과거의 믿음이 믿을만하지 않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게 되었다해도
이러한 새로운 관념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아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나아가, 깨달음의 길에 함께 하지 못했던 친구들이 여러분 보고 정신이 나갔다고 비난할 수도 있죠.
아님, 세상에 관한 모든 해답을 알고 다고 착각하고, 잘난척하는, 거만한 등신이라 비난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철학에는 경외할만한 점도 또한 있거든요.
일단 이러한 성장통을 겪고 나면, 사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되니까요.
예전에 여러분을 속였던 사물을 꿰뚫어 보게 된다고나 할까요.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관련된 퍼즐 하나가 있습니다. 다음 논변을 주의깊게 살펴보세요.
꼬리가 두개인 고양이는 없다. 모든 고양이는 없는 고양이보다 꼬리를 하나 더 갖는다. 따라서 모든 고양이는 세개의 꼬리를 갖는다.
아마 여러분들은 이게 확실이 잘못된 논변이라고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퍼즐같지도 않다고요.
앞선 두 전제는 옳게 들리지만, 결론이 ... 뭐라고라고라?
이 퍼즐은 우리가 특정한 관념을 논의할 때 사용하는 언어에 내재된 특이성을 활용한 겁니다.
특히, '없음,' '부재함,' 혹은 '공허함'같은 관념을 논할 때 말이죠.
첫번째 전제에서 'no cat'은 그런 고양이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꼬리가 두개인 사물을 떠올려 보세요. 아마 떠오르는 것 중에 고양이는 없을 겁니다.
꼬리를 두개 가진 사물이라고 떠올릴 수 있는 건 아마도 없을테니까요.
하지만 두번째 전제에서, 사용된 언어가 '노캣'이라는 사물이 실제 존재한다고 믿도록 우리를 속입니다.
.그런 사물은 없다'라는 의미 대신에 말이죠. 그 구절의 짜임새로 인해, 두개의 꼬리를 가진,
쉽게 떠올릴 수 없는 '노캣'이 있을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만일 노캣의 꼬리가 두개이고, 모든 고양이가 그것보다 꼬리를
하나 더 갖는다면, 모든 고양이가 세개의 꼬리를 갖게 되는 결론에 이르게 되죠.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지만요.
이때, 우리가 무엇 때문에 혼란을 겪게 되었는지 이해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그릇된 결론에 이르게 된 이유는 '어떤 것이 부재한다'는 말을 '뭔가가 존재한다'는 말로 오해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 결론이, 일정 수준, 완전히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면, 그건 언어의 덫에 걸려
꼬리가 두개인 노캣이라는 동물이 실제로 살고 있는 다른 현실을 상상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퍼즐을 해결하는 과정은 스위치를 켜는 상황과 상당히 유사하죠 -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무엇때문에 혼란스러웠는지 그 원인이 확연히 밝혀지니까요.
실제로 실재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간해내는 능력만 발휘할 수 있다면, 족한 문제니까요.
플라톤 생각에도 철학은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둠의 세계로부터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일은,
처음에 사람 어리둥절하게 만들어서 그렇지 나중에는 큰 보상감을 주거든요.
하지만, 좀 전 경우는 좀 심했죠. 꼬리가 세개인 양이라요? 사실
그런 게 있다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솔직히 전 어떤 고양이든 보기만해도 행복해요.
이쯤에서, 크래쉬코스 철학 이번 에피소드를 정리하죠. 오늘 우리는
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우상'에 대해 배우면서, '외양'과 '실재' 사이의 관계를 따져봤고요,
철학적 발견이 따르는 과정에 관해서도 이야기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림자, 즉, 그릇된 믿음의 함정 속으로 더 깊숙이 사라져 볼 생각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빛의 세계로 반드시 되돌아 올거라는 희망을 늘 마음에 품은 채 말이죠.
이번 편은 스퀘어스페이스에 의해 제공되었습니다. 스퀘어스페이스는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웹사이트,
블로그, 온라인 상점으로 바꾸는데 도움을 드립니다. 전문가 수준으로 디자인된 웹사이트를
특별한 기술이나, 암호화할 필요 없이 말이죠. squarespace.com/crashcourse에서 특별한 혜택을 누려보세요
크래쉬코스 철학 강좌는 PBS디지털 스튜디오와 연합해서 제작됩니다. 그들의 채널에서는
BrainCraft, It’s OK To Be Smart, PBS Idea Channel, 등 멋진 쇼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편은 쉐릴 킨니 박사님의 크래쉬코스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고,
많은 멋진 분들의 도움을 받았으며, 그래픽팀은 Thought Caf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