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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영상은 게임의 중요 스포일러들을 함류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자신이 직접 판단하시고 보시길.
"인간은 기억하고 싶은 것을 잊고, 잊고 싶은것을 기억한다." - 코먼 매카시, 더 로드의 작가.
상당수의 픽션들은 "도덕성"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다룹니다.
무엇이 옮고 무엇이 그른지,
심지어 긴급한 상황에서는 "도덕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루고 있는 픽션에서는
도덕성보다는 "생존"이 우선시 돼지요.
라스트 오브 어스는 평론가들에게 극찬받는 개발사인 "너티독"의 최근작입니다.
디렉터인 "닐 드럭만"과 "브루스 스트렐리"에 의해 감독되었죠.
기생 균류에 의해 세계가 멸망한 20년 후를 배경으로
플레이어는 주인공인 조엘로 플레이하여 어린 14살짜리인 엘리를 데리고
미국대륙을 가로지르면서 민병대인 "파이어플라이"에게 데려가야합니다.
1년간의 여정을 통해 아버지와 딸과 흡사한 관계에 집중하고,
라스트 오브 어스는 플레이어에게 하여금 인류의 멸망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게끔 합니다.
상징적으로나 또는 대놓고요.
정부는 가혹한 계엄령으로 명령을 지킵니다,
그리고 파이어플라이와 싸우기도 하지요.
파이어플라이는 인류를 구할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생존자들인 헌터나 여러 세력들은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들은 말그대로 "관광객"들을 상대로 습격이나 살인을 하지요.
심지어 빌같이 혼자서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라도,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이고 언제나 혼자 자신만의 구역을 방어합니다.
이 영상은 제가 여기기로는 게임 역사상 가장 게이머들을 분열시키는 엔딩에 집중할겁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입니다.
이 엔딩은 게임을 깨고나서 며칠간 제 머릿속을 멤돌게 만들었어요,
제 생각을 정리한 후에 이 뜨거운 화제가 돼는 엔딩에 대한 저만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저만의 주관적인 엔딩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나 다른 분들의 의견과 충돌할수도 있습니다.
저의 다른 게임의 평가에 비교하면
이 분석 외에는 직접적인 (이해불가)가 없었어요,
대신에 이 영상은 엔딩이 만들어낸 두가지의 질문에 대해 분석할거에요.
이것은 조엘의 도덕성과 행동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왜 조엘은 엘리를 구했는가?", 그리고 "왜 조엘은 엘리에게 거짓말을 했는가?"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말해드리겠습니다.
이것은 라스트 오브 어스의 엔딩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엔딩은 여러분이 조엘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집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 엔딩에 대한 분석.
엘리와 사라.
조엘이 단순히 엘리와 가까워졌다는 해명은 인류의 미래를 파괴한 조엘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대신에 조엘은 엘리가 그의 딸인 사라의 환생이라고 보았다는게 더 적당한 대답이 돼겠죠.
조엘의 인생에서 가장 눈에띄는 부분은 바로 오프닝에서의 사라였습니다.
그의 소중한 일들은 전부 사라를 위해서 이뤄낸 것들이었습니다.
그에게 소외감을 느끼는것을 제외하면 조엘이 사라를 사랑하는것처럼 사라는 그를 사랑합니다.
때문에 오프닝에서의 사라의 죽음은
게임의 본격적인 배경이 돼는 20년후의 폐인이 되어버린 조엘의 캐릭터성을 설명하게됍니다.
조엘에겐 사라의 죽음은 그냥 평범히 가까웠던 인물의 상실이 아니었습니다.
20년간 그의 꿈에서 지속적으로 괴롭힌 죄책감이죠.
생존자의 죄책감이라는 주제에 전부 관계되어있습니다.
오프닝 이후 게임 내에서 처음 사라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뤄진 부분은 바로 토미와 만날때였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 이후로 조엘이 엘리에게 훨씬 가까워지게 됐죠.
엘리와 사라를 연결하는 그 중요한 예제는
조엘이 엘리가 버려진 폐가의 소녀의 침실에서 찾았을때입니다.
이 장면에서 사태 이전의 조엘을 회상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조엘이 엘리를 떠나보내고 싶은 이유는 여전히 사라가 그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엘리는 당연하게도 사라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키지요.
조엘은 엘리를 토미에게 보냄으로서 엘리가 죽을수 있다는 공포를 없엘수 있다고 믿습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워요?"
"내가 샘처럼 됄까봐?"
"난 감염 안돼요."
"내 앞가림은 내가 해요."
"지금껏 위험한 상황을 몇번이나 겪었니?"
"지금까진 잘 해내고 있잖아요."
"토미랑 있으면 더 잘될 거야."
"난 그 애랑은 달라요."
"뭐?"
"마리아가 사라 얘기 해줬어요, 그런데.."
"엘리."
"네가 지금 얼마나 민감한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는구나."
왜냐하면 조엘이 엘리를 안전하게 지켜줘야한다는 책임에 대해 불안해하니깐요,
사라의 죽음이 여전히 죄책감으로 남아있기 때문이죠.
조엘은 자신보다 토미가 더 나은 보호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토미가 조엘과 사라를 빠져나오게하는데 있어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죠.
이 대사가 조엘의 머리속에서 무엇이 돌아가는지에 대해 많은 것들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넌 내 딸도 아니고 나도 네 아빠가 아니야."
이것은 이 분석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나중에 넘기겠습니다 왜냐하면 조엘이 지속적으로 엘리를 사라로 관련시키기 때문이죠.
하지만 동시에 조엘은 자신이 이 생각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차단합니다.
둘이 솔트레이크 시티로 도달했을 쯤에는
조엘이 엘리에게 수영과 기타를 가르치겠다는 언급을 합니다,
조엘은 확실히 사라를 관계시킵니다, 전 장면의 폐가의 기타가 바로 그 증거죠.
엘리가 조엘에게 사라의 사진을 돌려줄때
조엘이 말하길 과거는 절대로 지울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명백하게 사실이 됍니다.
조엘이 드디어 엘리를 데리고 수술로부터 구출할때
게임의 마지막 탈출 시퀀스는 게임의 오프닝을 연상케 합니다.
꿈같은 퀄리티도 서로 비슷하기도 합니다,
마치 플레이어가 새벽의 사라의 죽음 장면을 리플레이하는것처럼 말입니다.
보다시피, 조엘은 이것을 사라가 살아남았다는 기억으로 대체하려는 하는거에요.
조엘은 엘리를 구출해냈어요, 왜냐하면 또 다른 딸을 잃고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조엘은 메타포적으로나 사실상 엘리를 입양한거에요.
그러므로 조엘이 그녀를 보고 싶었던것은 구원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딸을 되얻고 싶었기 때문이죠.
토미의 기지로 다시 돌아올때 조엘이 말하길
모든 것들은 원래 있었던대로 다시 돌아간다고 합니다.
조엘은 여러 면에서 완전히 붕괴 직전이었어요.
조엘은 20년간 과거를 꾹꾹 누르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자기 자신을 모두로부터 멀리했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딸로부터 멀어졌던것처럼요.
조엘의 마음에는
엘리는 사라를 대체합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확실히 조엘은 정서적 안정면에서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테스는 분명히 엘리와 같은 감정을 주지 못했고요,
그녀의 공격적인 태도 때문에요.
조엘은 핵심적인 성격을 통해 숨겨진 예민성을 나타냅니다, 폭력적인 행동은 그의 죄책감의 압력을 풀어놓죠.
엔딩은 조엘에게 하여금 죄책감으로부터 해방을 맞게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죄책감은 고스란히 엘리에게 옮겨집니다.
엔딩의 모호함은 조엘이 엘리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서 나옵니다.
그리고 여기서 모든 것들이 합쳐지죠.
조엘의 정신 상태.
심리학적으로 말한다면
이 분석으로 통해 확실한건 조엘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는겁니다.
조엘은 분명히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살아가는 세상때문이죠.
그리고 그의 행동은 오로지 희망의 조각을 다시 맞춘다는 이유로 정당화됍니다.
생존은 조엘을 폭력적으로 만드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문맥속에서 그의 행동을 확장시키면 조엘은 사실상 살인마입니다.
조엘의 심리는 저를 놀라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너무나도 빠져들어서 자신의 인생을 바칠수도 있으니깐요.
하지만 그가 걸어가는 방향을 생각해보면,
그는 희망의 순간을 기다려왔다는게 나타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만 해."
그의 샘의 죽음을 따라가는 헨리의 자살에 대한 반응은
딸의 죽음으로 보았습니다.
조엘은 똑같이 일어날수도 있는 일을 막을려고 시도합니다.
데이빗이 말했던 것처럼,
만사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엘의 행동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살린거죠, 심리학적으로요.
엘리나 테스, 또는 토미 없이는
조엘은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조엘이 이기적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기로는
그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하지만 현대 정의로서는 아닙니다.
다른 말로는 이 세계의 이기심은 중요하거나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자신을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지키려면 필요할수도 있습니다.
어느 부모라도 이런 상황에서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것이 과연 조엘의 잘못인가요?
자신의 생명을 무릅쓰고 자신의 입양된 딸을 구한겁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선 그를 이기적으로 만들진 않죠.
여러분은 조엘의 행동을 두가지의 상반됀 방법으로 볼수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파괴한 나쁜놈이거나
또는 사랑하던 사람을 구함으로서 그의 행동은 정당화 될수도요.
영웅성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매우 인간적인 선택이었죠.
습격 이후에 들을수 있는 선택지 대화 중에서
조엘이 말하길 다수를 구하기 위해 민간인들이 군대에게 사살당했다고 합니다.
군대는 이런 짓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더 많은 시민들을 보호하는게 목적이니깐요.
하지만 조엘은 그냥 평범한 인간일뿐이에요,
그리고 그의 결정은 영웅이 될려고 한 행동이 아니죠.
이건 평범한 할리우드식 엔딩이 아닙니다.
이 세계의 베테랑으로서 그는 "양쪽 다 있어봤습니다." (한글판에선 "나도 해봤었으니까."
그는 생존하기 위해서 셀수도 없는 사람들을 죽여왔어요,
그리고 그 자신이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너무 열중해왔죠.
이것은 게임은 여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회가 계속 운영돼는지 보아왔어요.
군대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인구를 통제함으로서 살아남게 합니다.
헌터와 데이빗의 집단은 살아남기 위해서 할수 있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조직적인 강도짓을 하면서 말입니다.
하수구 챕터는 심지어 한 남자조차도 사회를 만들어냈다는것을 보여줍니다.
사태 직후에 조직에서 떠남으로서요.
토미와 마리아는 자급자족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냈습니다, 자연의 자원으로 도움을 받음으로서요.
파이어플라이는 지푸라기라도 잡을려고 성공할지 확실하지 않은채 백신을 만들어냅니다,
백신을 만들려던 이전의 시도들을 생각해보면 말이죠.
심지어 빌조차도 자신만의 격리됀 사회를 만들어냈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어색한 방어체계를 구축함으로서 말이죠.
잘 보면
사회는 언제나 그 자체를 조절하는 방법을 찾습니다.
그리고 조엘은 이것을 확실히 목격했지요.
감염사태같은 강한 압력에 세계가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목격한 사람으로서
과연 백신 개발이 성공돼더라도 크게 달라질까요?
조엘의 심리적인 상태는 그의 믿음을 정당화합니다,
정말로 엘리를 실험하더라도 인류에 이득이 없다고 생각한겁니다.
파이어플라이는 그들의 마음에 인류의 미래를 보았던거에요,
존경받을만하지만,
더 나은 미래로 바꾸는데엔 꼭 필요하진 않을겁니다.
실질적인 관점에선
백신은 혼란만 더 가중시킬거에요.
헌터는 정부를 거부했고, 정부도 파이어플라이를 거부했죠.
그러니 이러한 집단들을 서로 충돌하게 만드는것은 결과적으로 폭력만이 남을겁니다.
데이빗의 집단은 식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선 더 격한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킬거에요.
중요한 사실은
집단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재편성하려고 합니다.
왜 그걸 바꿀까요?
개인적으로 전 파이어플라이의 의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인류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건 좋지만
하지만 제 해석에 따르면 잘못된 방법으로 하고 있어요.
둘다 오만하고 무지하죠.
그들은 정부와 전쟁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까지 잘못한것이 없어요.
정부는 극단적인 계엄령을 시행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즉각사살 같은 것 말이죠,
감염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이해할수 있습니다,
격리 지역이 지속적으로 무질서와 감염자들에 의해 점령당하니깐요.
인생은 모두들에게 어려운겁니다,
그리고 격리지역은 전체적으로 장벽을 제외하곤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파이어플라이가 더 문제를 일으키는거죠.
조엘은 토미와 마리아의 집단을 사회가 나아가야할 최선의 방법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자연의 자원을 이용하여 전기를 복구합니다,
심지어 농작물까지 키울수도 있죠.
엔딩에서 조엘이 토미의 집단으로 가는 이유는 그곳이 유일하게 생존가능한 집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모든 집단들을 평가하자면
토미의 집단이야 말로 유일하게 긍정적인 성과가 있는것 같습니다.
자신들을 직접 방어해야겠지만
심지어 백신이 있더라도 바깥에는 감염자들이 넘쳐납니다.
조엘의 정신상태에 대해서 다시 언급하자면
그의 불안정함에 대해서 몇몇 징후들이 나타납니다.
데이빗이 설명하길 조엘이 미친놈이라고 기술합니다,
꽤 흥미롭죠 왜냐하면 감염자들과 헌터들을 죽이는것은 정당방위로서 허용돼니깐요.
하지만 주인공 둘이 대학으로 도착했을때
여기서의 인간의 위협은 미확인되었습니다.
조엘은 어떠한 전후사정 없이 자신과 엘리에게 총알이 날라와서 그자들을 죽였죠.
심지어 그들 중 한명이 말하길 조엘이 자신의 친구를 죽였다고 합니다.
이 집단이 확실히 보자마자 쏜것은 맞지만,
어쩌면 그들이 조엘과 엘리를 감염자로 착각했을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그 장소에 감염자들로 채워졌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말이죠.
조엘은 스토리 내에서 단 한번도 어떤 집단에게 대화를 시도해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수십년간의 생존자로서의 필사적인 행동으로 인한 정신쇠약이죠.
게임은 전체적으로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소설은 "생존자의 광기"라는 주제를 삼고 있는 작품입니다.
더 로드에서는
소년은 소년의 아버지가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이상이 있다고 말하는 어떤 가족에게 입양됍니다.
조엘이 실제로 미치지 않았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사실 게임 내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습니다.
병원 레벨의 마를린의 기록은 그녀가 확실히 불면증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계속 그녀를 편집증으로 이끌게 돼죠.
마를린은 지속적으로 엘리의 죽은 엄마인 "아나"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조엘을 보는것이 죄책감을 느껴서 압박을 받는다고요.
그 어떤 사람이라도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수 있을지 정신적으로 건강할까라는 물음이 제기됍니다.
빌은 게임 내의 정신건강에 대한 흥미로운 예제입니다, 그가 남긴 메세지들을 확인해보면 말이죠.
그의 파트너의 부재는 정신분열증과 조울증에 걸리게 합니다.
그는 비정상적인 행실과 사회적인 교류를 하고
그 자신에게 보내는 메세지는 빌이 광대망상에 사로잡혔다는것을 보여주고,
심지어 엘리조차도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는 언급을 합니다.
전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빌이 의사소통의 부재로 인하여 인격장애가 있다고 확실히 말할수있습니다.
"그러면 내 마을에서 꺼져."
라스트 오브 어스가 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품과는 달리 해낸 성과가 있다면
바로 "캐릭터들의 심리"입니다.
공포, 죄책감, 공황같은 것들은 캐릭터가 고통받는 이유의 사소한 요소들일 뿐입니다.
개발진들이 중점을 둔 것은 이것이 단순한 좀비 게임이 아니라는 거에요
어떻게 감염이 두뇌에 관계돼는지 강조돼죠.
동충하초는 두뇌를 조종해서 숙주에게 작동돼는 부분이 남아있을때까지 명령을 내립니다.
수분이나 혈류가 있을때까지요.
이 심리는 게임에게 더 깊은 뜻을 전달합니다.
우리는 캐릭터들이 먹고 자고 마시는걸 거의 보지 못합니다.
이것은 캐릭터의 신체를 정상적으로 기능하는걸 방해하는 수면 결핍이나 탈수 증상을 생각나게합니다.
어쩌면 너무 무리한 해석일수도 있지만
하지만 이 질문을 제기하는것처럼 멀리가는것일까요?
과연 감염자들이 인간들보다 더 잘 기능하는가?
시계는 조엘의 정신 상태를 대변합니다,
물론 사라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시계가 고장났다는 사실은 이 세계의 시간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게임 내의 캐릭터들은 확실히 시간이나 날, 그리고 일주일의 몇일인지에 어떤 지식이 없습니다.
계절의 지속적인 변화는 적절한 사고없이 시간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정에서 조엘과 엘리가 시간감각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시사하죠.
장소들 마다 (이해불가) 보스턴과 링컨, 피츠버그 등 이요.
시간에 의해 압박을 받는 순간은 바로 조엘이 엘리를 구해야할때입니다.
"어디냐고?"
"최상층이야, 저 끝에."
거짓말.
그러니 조엘이 왜 엘리에게 거짓말을 했을까요?
뭐, 조엘이 엘리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어서로 보이지만..
제 자신은 조엘이 여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기 위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시간의 압박의 부재
테스의 죽음과 조엘의 정신문제
조엘은 그런 것들이 다시 있었던 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하려는거에요.
그는 토미와 다시 가까워졌고,
번영하는 사회를 발견했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조엘은 딸과 함께 다시 지낼수 있으니깐요.
많은 스토리에서 두 캐릭터의 생존은 구원입니다.
조엘과 엘리는 서로 가까워졌고,
토미와 그의 가족과 함께 안전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게임에서 아름다운 비주얼을 빼면
이 세계에서는 흑백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회색만 있을 뿐이죠.
조엘의 눈을 보고 있는 엘리를 잡고 있는 긴 장면은
엘리가 어쩌면 조엘이 거짓말을 했다는걸 인지했을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의 거짓말을 간파했지만
새 아버지의 사랑때문에 묵시하지요.
거기에 대한 증거는 조엘의 대답에 대한 그녀의 짦고 간단한 답변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어쩌면 그냥 그녀가 속아넘어갔을수도요.
조엘의 심리건강은 바로 "걱정"입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은
이젠 그는 더 이상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두려움에 대한 부담을 짊어갈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보아하니 백신이 개발되어도 그 어떤 것도 눈에 띌정도로 변하지 않았을거란 겁니다.
오로지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조엘과 엘리가 서있는 장소를 제외하고요.
"사라!"
"손 움직여보렴."
"안단다, 알고있어."
"잘 들으렴, 아픈거 알고 있단다."
"괜찮을거야 우리 아가, 아빠랑 같이 있자."
"나한테 보여줘 봐."
"옛날 옛적에 말이야.."
"옛날 옛적에 말이야.." "이럴수가."
"나도 정 붙인 놈이 있었거든."
"그런데 이 거지같은 세상에선 잘 되는게 딱 하나뿐이거든."
"죽는거."
엔딩을 좋아하시거나 싫어하시거나,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조엘의 파이어플라이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그에게 하여금 유일한 희망을 잃는데 멈추게 했습니다.
이 세계는 자신을 알아서 돌봐야하는 세상입니다,
조엘이나 헨리같은 캐릭터가 누군가를 도와줄때
인류에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것을 보여줍니다.
조엘은 세상을 구할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구할 필요가 없으니깐요.
세상은 알아서 스스로 돌볼 방법을 찾을겁니다.
극소수의 게임만이 저에게 하여금 이 수준으로 캐릭터와 스토리에 감성적으로 연결하게 만드는데 성공했었습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는 진정으로 이 세대를 규정짓는 작품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모든 세대를 포함해서요.
내러티브로 통해서 생성돼는 조엘에 대한 감정이입은
엔딩을 더욱 낙관적으로 만듭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전진해나갈테니깐요,
그리고 생존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방법을 찾아갈테고요.
조엘의 행동은 굉장히 의심스럽습니다.
하지만 게임 내에서 희망을 찾는 심오한 도전은 어두운 시기속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극소수의 픽션들만이 라스트 오브 어스 수준으로 설득력있게 표현하는데 성공해냈습니다.
동충하초는 격렬한 변화에 대응하는 인류에 대한 메타포가 됍니다.
그리고 인물마다 진정한 사회가 무엇인지를 보여줘요.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습니다.
스토리는 조장돼거나 억지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냥 일어났을뿐이죠.
자연이 견뎌내고 있고 인류는 그것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세계는 그대로입니다,
왜냐하면 조엘이 말하길
어쩌면 그렇게 될 운명이니깐요.
라스트 오브 어스 엔딩 분석. 제작 - Ryan Hollinger 번역 - 포키. https://www.youtube.com/watch?v=ImvQs0fPJq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