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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주로 그들의 성격이나
행동에 대해 비판한다
그 이유 때문에
난 사회적인 교제를 끊고 산다
그러다 보니 노년이 외롭다
평생 힘들게 일했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처음에는 먹고 사느라 일했는데
나중엔 학문을 사랑하게 됐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역시 의사로 룬트에 살며
결혼한 지 오래됐고 애는 아직 없다
모친은 살아 계시며 아흔이 넘었는데도 활동적이시다
아내 카린은 오래 전에 죽었다
교수님, 저녁 준비됐어요
고맙소
다행히도 좋은 가정부가 있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난 철저하고
소심한 노인이라
나와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
난 이삭 보르그고
일흔여덟이다
내일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다 의사로서 50년 만에...
"산딸기" (1957)
6월 1일 새벽
해괴한 꿈을 꿨다
꿈에 아침 산책을 하다
길을 잃었는데 빈 거리에
황폐한 집들이 있었다
어디 편찮으세요?
아침 좀 준비해 주겠소? 난 차로 가야겠소
교수님, 더 주무세요 아홉 시에 커피를 드릴 테니
열 시에 같이 비행기로 가세요
아침 안 먹고 바로 가겠소
연미복은 누가 챙기죠?
- 내가 챙기지 뭐 - 그럼 난 어쩌죠?
차로 가든지 비행기로 가든지 좋을 대로 하시오
명예 학위 받으시는 걸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요
만반의 준비를 해놨는데
차로 가시다니 무슨 변덕이죠?
기념식이 오후 다섯 시니까
지금 떠나면 열 네 시간이나 있잖소?
다 망치는군요!
아드님이 비행장에 마중 나오시잖아요
그거야 적당히 설명하면 되잖소?
차로 가시면 전 절대 안 가겠어요
이거 봐요, 아그다 씨
그럼 차로 가세요 내 생애 최고의 날을 망치시네요
우린 결혼한 사이가 아니잖소?
결혼 안 한 걸 매일 밤 신께 감사 드려요
74년을 제 상식에 따라 살아왔어요 오늘도 제 생각대로 하겠어요
말 다하셨소?
그래요
두고두고 투덜댈 거예요 이기적이고 심술궂은 노인이라고
40년 간 보살펴 준 사람 생각은 하나도 않는다고요
내가 어떻게 그렇게나 오랫동안
저런 고집불통을 견뎠을까!
말만하세요 내일이라도 당장 나가드리죠
어쨌든 난 차로 갈 테니까 오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요
내가 어른이라 당신 지시를 받을 필요가 없어 다행이오
어느 누가 이보다 잘 싸겠소
관둬요!
성질도 고약하지
계란 두 개 삶을까요?
그렇게 해주면야 더없이 고맙지
날 명예박사가 아니라 명예 천치로 추대했어야 돼
저 큰 애기 선물로 달래야겠어
잘 토라지는 사람은 질색이야
파리 한 마리도 다치기 싫어 그녀를 냅둬야지
교수님, 토스트는요?
됐소, 놔둬요
왜 화가 나셨죠?
안 마실 거요?
안 마셔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우리 며느님이 어떻게 깼지?
두 분이 그렇게 소란 피우는데 어떻게 자요
안 그랬는데
소란은 무슨 소란
룬트까지 차로 가실 거예요?
그래
저도 가도 돼요?
집에 가려고?
네, 집에 가려고요
에발트한테?
이유는 묻지 마세요 돈이 있으면
기차로 가겠지만...
그럼 같이 가자
10분만 기다려 주세요
세상에!
담배 좀 피우지 마라 냄새가 싫어
잊어버렸어요
여자들 금연 법이 있어야 하는데
날씨 좋죠?
그래, 그런데 좀 무덥구나
- 천둥이 칠 것 같다 - 그래요
나도 시가는 무척 좋아하지
날 진정시켜 주거든 남자들의 못된 버릇이지만...
여자들의 나쁜 버릇은요?
우는 것, 임신, 이웃 험담
올해 연세가 몇이시죠?
왜 묻니?
그냥요, 안 돼요?
난 왜 묻는지 안다
아세요?
숨길 거 없다 넌 날 좋아한 적 없어
시아버님으로 대할 뿐이에요
왜 돌아가지?
갑자기 그러고 싶어서요
낳고 싶어서 낳은 아들이 아니었지
그런 것 같아요
걘 날 많이 닮았지 원칙대로 사는 것부터
말씀 안 하셔도 알아요
꾼 돈만 해도 그렇지
그 얘기라면 관두세요
조교수가 되면 돈은 꼭 갚을 거예요
매년 5천 갚기가 힘들지만 명예 때문이라든지
무슨 다른 이유에서라도...
약속은 약속이다
저희는 편히 산 적 없어요
그이는 죽자고 일을 해요
너도 벌이를 하잖니?
아버님은 돈더미 위에 계시고요
다 쓰실 것도 아닌데 말이죠
약속은 약속이다 에발트도 그걸 존중하고
글쎄요 아버님을 미워하죠
넌 나한테 불만이 뭐지?
솔직히 말씀드려요?
그래, 말해 보렴
아버님은 이기주의자세요
냉혹하시고 남의 말은 들으시지 않죠
그런 걸 다 아버님의 점잖은 태도와 매력 뒤에 감추시죠
겉으론 인정 많게 보이지만 철저한 이기주의자세요
저희처럼 아버님을 가까이 대하는 사람은 못 속이죠
한 달 전 제가 아버님께 갔을 때를 기억하세요?
어리석게도 에발트와 전 도와주실 줄 알았어요
몇 주일만 머물게 해 달랬을 때
뭐라셨나 기억나세요?
얼마든지 있으랬지
아마, 잊으셨겠죠 그때 아버님은 그러셨죠
'너희 부부 문제에 날 끌어들이지 마라'
'난 절대 신경 안 쓸 거다'
'너희 둘이 알아서 해결해'
내가 그랬나?
- 그뿐인 줄 아세요? - 더 있어?
그대로 말해 볼까요?
'마음의 상처 따위엔 관심 없다'
'나한테 한탄하지 말고'
'치료가 필요하면 정신 분석가나'
'목사를 찾아가렴 그게 유행인가 보던데'
내가 그랬나?
아버님은 유형별로 판단하시죠
아버님께 의존하는 건 끔찍해요
네가 집에 와 있는 게 좋았다
고양이처럼요
고양이든 사람이든
너처럼 좋은 여자가 날 싫어해서 정말 섭섭하다
- 싫어하진 않아요 - 그래?
- 아버님이 안됐죠 - 안됐어?
아침 꿈 얘길 해주고 싶구나
꿈엔 별로 관심 없어요
물론 관심 없겠지
어디 가시죠?
네게 보여줄 데가 있다
스무 살 때까지 우린 여름을 늘 여기서 보냈지
내 또래 친척들이 모두 열이었다
지금도 누가 살아요?
올 여름엔 안 살지
전 수영 좀 할게요 시간 있죠?
그러려므나
산딸기가 자라는 곳!
내가 좀 감상적이었나?
피곤해서 그런가
향수에 젖었던가?
어린 시절 추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어릴 적 뛰어놀던 곳...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날이 생생하게 생각나면서
그때 있었던 일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내 앞에 펼쳐졌다
마치 실제로 일어나는 듯 아주 강렬하게
사라?
사라!
나야, 사촌오빠 이삭
나이를 먹었으니 좀 늙었지
넌 하나도 변치 않았구나
뭘 하니? 날 기다려?
산딸기 따고 있어
이렇게 일찍 젊고 예쁜 처녀가 딴
싱싱한 딸기를 드실 분은 누굴까?
오늘이 아론 삼촌 영명축일이잖아
선물을 준비 못해서
딸기라도 한 바구니 드리려고
도와줄까?
샤를로타하고 지그브리뜨는 벽걸이를 만들고, 안젤리카는 케이크를 만들었어
애나는 그림을 그렸고
쌍둥인 불러드릴 노랠 만들었어
귀머거리 삼촌이니 그게 최고지
삼촌이 얼마나 노래를 좋아하시는데
넌 목덜미가 참 예쁘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
- 누가 그래? - 내가!
오빤 잘난 척만 하는
징글맞은 남자야
넌 사촌오빠인 날 사랑해
오빠를?
이리 와, 키스해 줄게
오빠 이런 거 이삭한테 이를 거야
이삭 그 꼬마 정도는 한 손으로 혼낼 수도 있어
이삭하고 비밀리에 약혼했어
집안이 다 아는데 무슨 비밀!
쌍둥이들이 떠들어서 그래
언제 결혼할래? 언제 결혼할 거야?
사촌오빠 넷 중에 이삭이
제일 잘난 척 안 해
이삭이 제일 괜찮아
제일 심사가 고약하고
아둔하고 잘난 척하는 건 오빠고!
고백하시지 내가 맘에 든다고
냄새나는 시가까지 피워 대고
남자다운 냄새지
쌍둥이들이 그러는데
요즘 베르군트 네 여자랑 어울린다며?
쌍둥이들도 그랬지만 내 생각에도 걘 단정치 못해
넌 화낼 때 더 예뻐
키스해 줘 더는 못 참겠어
홀딱 너한테 반했어
- 빈말하지 마 - 아니야
쌍둥이들이
오빤 여자라면 사족 못 쓴대
사실이야?
난 몰라! 내 딸기!
이삭이 알면 뭐라고 할까? 이삭은 날 사랑하는데
어쩌면 좋아... 왜 그랬어!
오빤 날 나쁜 여자로 만들었어!
정말이야!
꼴도 보기 싫어 아침 식사 때까진!
서둘러야겠네 딸기 좀 담아 줘
이런, 딸기 물까지 들었어
브리짓타, 크리스티나! 이삭은 어딨니?
아빠랑 밖에서 낚시해서 징소리가 안 들려요
아빠가 밥상을 앞에 놓고 기다리게 하지 말랬는데
주여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벤야민 얼른 손 씻고 와라
넌 아직도 깨끗한 걸 모르니?
씻었어요
지그브리뜨 안젤리카한테 수프 줘라
손톱이 새까맣구나
빵 좀 이리 줘
웬 버터를 그렇게 바르니?
샤를로타 소금이 또 굳었구나
밖에다 두지 말라고 했잖니?
손톱에 물감이 묻어서 그래요
누가 산딸기를 따왔지?
- 제가요 - 뭐라고?
제가요!
더 크게 말해 못 들으시잖니
제가요!
삼촌 영명축일을 잊지 않았구나
고맙구나
삼촌 축하주 한 잔 드셔야죠!
아버지 안 계실 때 술은 안 돼
삼촌은 벌써 석 잔이나 마셨어요
아까 우리 둘이 분명히 봤어요
너희도 산딸기를 따왔다고? 고맙다
식사 때는 조잘대지 말랬지?
침대 정리도 안 하고 벌로 은수저를 닦아라
숙모 말대로 해!
벤야민, 손톱 뜯지 마
애나, 뭘 하니? 어린애가 아니잖니?
삼촌한테 그림 드리려고요
지금 드리고 싶은데요
- 어디 있는데? - 바로 탁자 밑에요
식사 끝내고 해
전위 작품이라 할 수 있겠어요
누가 누군지 분간이 안 돼
사라 언니와 지그프리트 오빠가 그렇고 그렇더라
우리 둘이 봤지롱!
그만 좀 해
입을 다물든지 나가거라
말할 자유도 없어?
그만두지 못해!
사라 언니, 얼굴 빨개졌네
얼굴이 빨개졌어! 지그프리트 오빠, 사라 언니!
조용히 해!
무슨 짓이니?
거짓말이야, 거짓말
이삭은 참 좋아
품행이 단정하고 감성도 풍부하고
시도 같이 읽고
사후의 삶 얘기도 하고
피아노도 같이 치고
키스도 꼭 어두운 데서만 해
죄에 대해서도 얘기해 줘
이삭은 나보다 수준이 높아
난 버러지 같아!
난 버러지밖엔 안 돼
가끔 내가 더 나이가 든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나이가 같은데도 어린애 같아
지그프리트 오빤 짓궂지만 재밌어 집에 갈래
여름 내내 이곳에서
놀림감이 되긴 싫어
그러긴 싫어!
지그프리트가
계속 짓궂게 굴면
방학 때 일하게 만들게
아빠가 해결해 주실 거야
오빠가 빈둥댄다고 생각하시거든
이삭이 안됐어 나한테 잘하는데
일이 왜 이렇게 꼬일까?
다 잘 될 거야
벌써 노래 시작했다
귀가 먹었는데 노랠 선물하다니
쌍둥이들다워
'꽃도 풀도 모두 고개를 숙이네'
'사랑이 가득 찬 우리 집을 향해'
'오늘 우린 아론 삼촌을 축하하네'
'우리의 노래로'
'영명축일을 축하하네'
아론 삼촌을 위해 만세 삼창!
삼촌 만세, 만세, 만세!
이삭하고 삼촌한테 가 볼게
그래
공허함과 슬픔이 날 엄습해 왔는데
여자애 목소리에
- 꿈에서 깨어났다 - 할아버지 집이에요?
할아버지 집이에요?
아니다
거짓말 안 하셔서 다행이네요
이 동네 땅은 아빠 거예요
이 집에서 살았지 200년 전에
그래요?
- 저 차는 할아버지 거예요? - 그래
골동품 같아요
골동품이지, 차 주인처럼
말씀을 재밌게 하시네요 멋져요!
어느 방향으로 가세요?
룬트까지 간다
정말요? 전 이탈리아로 가는데
잘됐구나, 같이 가자
전 사라예요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죠
난 이삭이다 내 이름도 그렇지
사라와 이삭이 결혼했던가요?
아니, 안타깝게도 사라는 아브라함과 결혼했지
그럼 출발하시죠
일행이 한 명 더 있다 저기 오는군
- 마리안, 사라야 - 안녕하세요
길동무가 생겼어
사라는 멀리 이탈리아로 가는데 우릴 위해 룬트까지 바래다 준다는구나
할아버진 정말 재밌으세요
가요!
얘들아! 이탈리아 차편이 생겼어
얘는 안더스, 안경 쓴 앤 빅토르 이삭 할아버지셔
너희가 입 벌린 미인은 마리안
와, 정말 큰 차다!
다 탈 수 있어
짐은 뒤 트렁크에 넣고... 괜찮겠지?
이삭 할아버지 저랑 안더스는 꼭 붙어 다녀요
서로 미치게 사랑하고요
빅토르는 들러리죠 아빠 주문대로
빅토르도 절 사랑하고 안더스를 감시하죠
셋의 여행은 아빠의 착상이에요
빅토르를 꼬셔서 아빠를 따돌릴까 봐요
전 아직 숫처녀예요 그래서 이렇게 솔직하죠
전 파이프도 피워요
빅토르가 몸에 좋대요 빅토르는 건강이 우선이래요
내 옛 애인 이름이 사라였지
어머나! 저랑 비슷했어요?
그래, 많이 닮았다
어떻게 되셨어요?
형 지그프리트와 결혼해 애를 여섯 낳았지
이젠 일흔 다섯의 멋있는 할머니가 됐지
늙을 걸 생각하면 끔찍해
제가 또 버릇없이 굴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완전히 저희 잘못입니다
처가 운전했죠 괜찮으세요?
다행입니다
소개를 해야죠 전 알만입니다
전기공사에 다니죠
여기는 베릿 제 처는 배우였죠
배우 얘길 하다가 그만 사고를...
와서 사과 드려
죄송합니다 제 잘못이에요
남편을 치려는데 커브 길이라...
신은 즉각 벌을 주신다죠? 가톨릭 신자니 대답해 봐요
차부터 세우고 봅시다
- 저희 차는 그냥 두셔도... - 입 좀 다무세요
당신처럼 이기적인 줄 아세요?
처는 신경질적이죠 쇼크 받은 적이 있어서요
젊은이들 앞에서 힘자랑하는 저이를 보세요
아가씨 앞에서 뽐내느라 안간힘을 쓰는군요
여보, 그러다가 뇌출혈로 쓰러지겠어요!
처는 절 창피 주는데
심리요법상 그냥 두죠
마누라가 우는 게 진짠지 연극인지 알 수가 없어
이번엔 진짜 같군!
죽을 뻔했으니 진짜겠지
입 좀 닥쳐요
제 처는 실감나게 연기하죠
2년 간 암에 걸렸다며 날 들볶고
온갖 증상이 나타났다며 주위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의사들은 아무 이상이 없대요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의사보다 처 말을 더 믿죠
조금 흥분하신 것 같은데
부인을 가만두지 그러세요?
여자의 눈물은 신성하다?
눈물에 동요되면 안 되죠
부인은 미인이지만 처는 한물갔으니
동정이 간다 이건가요?
여러 가지로 부인께 동정이 가요
냉소적이지만
신경질적은 아니시군요
처는 신경질적이죠
제가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가톨릭 신자시라고요?
네, 그래서 참고 있는 거죠
우린 서로를 조롱해요
그녀는 신경질적이지만 전 신앙심이 있죠
보시다시피 우린 서로를 필요로 해요
우리가 아직 서로 안 죽인 건 이기심 때문이죠
드디어 폭발했군
이런 걸 뭐라고 하죠? 실성했다고 하나요?
정말 재밌어!
스톱워치가 있다면 몇 초 만에 폭발했나 쟀을걸
입 다물어요! 닥쳐요!
무례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내려 주시겠어요?
저희를 용서하세요...
이곳에 돌아오니 감회가 새롭다
여기서 첫 개업을 했고
노모가 인근 저택에서 사신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동네에 또 오셨군요
가득 채울까요? 연료통 열쇠 주세요
이봐! 이리 좀 와 봐!
보르그 선생님이셔
동네에서 칭송이 자자하신
세계 최고의 의사 선생님이셔
우리 애도 선생님 이름을 딸까 봐요
이삭 오카만! 수상 이름으로 딱 어울려요
딸이면 어떡하지?
분명히 아들일 거야 기름과 냉각수도요?
그러게
아버님은 요즘 어떠신가?
좀 힘들어하세요
어머니는 기운이 펄펄하시고요
모친께 들르실 거죠?
물론이지
모친께서도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아흔다섯이 넘으셨죠?
- 아흔여섯이야 - 대단한 분이시라니까요
얼마인가?
- 그냥 두십시오 - 그러지 말게!
무시하지 마십시오 저희도 그 정도는 감당합니다
자네가 왜 내 기름 값을 내? 고맙네만...
기억 안 나세요? 이깟 기름 값으론
못 갚는 게 있죠
우린 잊지 않았어요
동네에 가서 물어보세요
모두 선생님의 친절을 기억해요
그냥 여기 있을걸...
- 무슨 말씀이죠? - 내가 뭐랬나?
여기 있으실걸... 하셨어요
그랬나?
여하튼 고맙네
아들이 태어나면 소식 주게 내가 대부를 서지
- 주소는 알지? - 네
점심 식사 때 기분이 좋아져서
젊은 친구들에게 시골 의사 시절 얘길 해줬다
내 얘기는 성공적이어서
예의상 웃는 것 같진 않았다
식사 때 포도주를 마셨고 그 다음엔 커피를 마셨다
'삼라만상이 그토록 아름다울 때야'
'그 원천이신들 얼마나 빛나리!'
안더스는 목사가 될 거야 빅토르는 의사 지망
네 시낭송은 협정 위반이야
신을 거론 않기로 했잖아
아름다웠어!
너처럼 똑똑한 현대인이 어떻게 목사 공부를 하지?
네 합리주의는 과장됐어
내 생각에 현대인은...
내 생각엔...
인간은 하찮은 존재임에 맞서고 오로지 자신과 자신의 죽음을 믿어
다른 건 넌센스고!
현대인이란 가공의 존재야
인간은 죽음을 싫어하고 하찮은 존재란 걸 못 견뎌
민중에게는 종교를 상처에는 아편을?
쟤들 귀엽죠?
전 늘 마지막 말에 동의해요
산타클로스를 믿더니 이젠 신을 믿는구나
넌 상상력이라고는 없어!
- 교수님 생각은요? - 말씀해 주세요
내가 뭐라고 하든 자네들이 비꼴 테니까
아무 말 안 하겠네
그럼 쟤들 손해게요?
아냐, 크게 혜택 받았어
'내가 찾는 님이여 어디 있나이까?'
'동틀 무렵 내 동경은 정점에 달하고'
'캄캄한 밤이 와도... 밤이...'
'밤이 와도 님은 자취도 없네'
'내 가슴은 이렇게 불타는데!'
신을 믿으세요?
'님의 자취는 바로 거기...'
'꽃의 부드러운 냄새에 바람에 나부끼는 밀밭에'
'내 한숨 속에, 숨 쉬는 대기에 님의 자애로움이 있네'
'그분 음성을 듣네 여름 바람이 살랑대는 곳에서...'
사랑의 시로는 괜찮네요
난 또 굳어 있었어 이런 일도 있다니까
난 어머님을 뵈러 가야 돼 곧 돌아올게
- 저도 가도 돼요? - 물론이지
젊은 친구들, 안녕
천둥이 치네요
방금 너한테 축하전보를 치고 왔다
명예박사 학위 받는 오늘
이렇게 오다니!
이심전심인가 봅니다, 어머니!
저 여자가 네 처냐?
나가라고 해 말도 하기 싫다
우리 속을 얼마나 썩였는데
제 처가 아니에요, 어머니
에발트의 처예요 제 며느리 마리안이예요
그럼 왜 인사를 안 하니?
안녕하세요, 할머님
어떻게 여행을 하니?
스톡홀름에 갔었어요
남편과 아이는 어떡하고?
저희는 아이가 없어요
요즘 젊은 애들은 이상해 난 열씩이나 낳았는데
저기 큰 상자 좀 가져오렴
우리 어머니도 이 집에 사셨지
너희도 외할머니 뵈러 왔었는데 기억나니?
그럼요
이 상자엔 네 장난감도 들었다
누구 거였나 생각하느라 애쓰지
자식 열이 이삭만 빼고 다 죽었지
손자가 스무 명인데
1년에 한 번 에발트만 와
오해는 마... 섭섭한 건 아냐
증손자가 열다섯인데 얼굴도 못 봤어
매년 특별한 날마다 모두한테 선물을 보내지
고맙다고 답장들은 해도 찾아오는 놈은 없어
예외로 돈 빌리러는 오지
내가 따분한 늙은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진 마세요
또 하나 내가 잘못하는 게 있지
죽지 않는 거
유산상속도 않고
젊은 애들이 계산해 놓고 기다리는데도 말야
이 인형은 지그브리뜨의
여덟 살 때 생일 선물이었지
이 옷은 내가 만들었다
걘 갖고 놀지를 않았어
그래서 샤를로타가 가졌지
많이 좋아했는데...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
누군지 알아보겠니?
지그프리트는 세 살 넌 다섯 살 때야
그리고 나!
세상에! 그때 얼굴들 좀 봐라
절 주실래요?
얼마든지 낡은 건데 뭐
이 스케치북은...
쌍둥이 건가, 애나나 안젤리카 건가, 모르겠네...
모두가 여기에다 이름을 적어 놨어
크리스티나가 썼군
'이 세상에서 아빠를 제일 사랑해!'
브리짓타도 써 놨네 '난 아빠랑 결혼할래'
재밌지 않니? 난 볼 때마다 웃어
춥지 않니? 불을 때도 소용없어
아뇨, 별로요
난 늘 춥단다
주로 이 뱃속이 왜 그렇지? 넌 의사잖니
저혈압이시라 그래요
간병인더러 차라도 내오랄까? 앉아서 얘기 좀 하게
됐어요 그만 방해할게요
얘야, 잠깐만
지그브리뜨의 장남이 쉰이 된다니
아버지 금시계를 줘야겠다
시계 바늘은 떨어졌지만 그게 대수겠니
지그브리뜨의 아들이 갓 태어났을 때가 생각나는구나
여름 별장 라일락 그늘 아래 조그만 바구니에 담아 뉘였는데...
벌써 오십이라니!
네 사촌 사라가 늘 안고 다녔지
칠칠맞은 지그프리트와 결혼했어
그만 가 봐라 네 볼 일을 봐야지
이렇게 와 줘 정말 고맙다 또 만나자
에발트한테 안부 전하고 잘 가거라
안더스와 빅토르는?
신의 존재에 대해 논쟁하더니 화를 내며 소리 지르더군요
안더스는 빅토르 팔을 비틀고
빅토르는 신의 존재를 험담했어요
신은 잊고 저한테 관심을 보여 달랬죠
난 이해를 못한다면서 원칙의 문제라나요
그래서 난 떠났죠
걔들끼리 그 문제 결판내려고 언덕 쪽으로 갔어요
지금쯤 육박전 할걸요
- 어디 있지? - 저기요
가서 데려올게요
누가 더 맘에 드세요?
너는 누가 더 맘에 드니?
모르겠어요 안더스는 목사 되려고 해서 그런지
착하고 다정해요
하지만 목사 부인은 좀...
빅토르도 좋아요 아마 다른 면에서
- 성공할 거예요 - 성공하는 게 뭔데?
의사는 돈을 잘 벌잖아요 목사들은 고리타분해요
다리도 늘씬하고 목도 멋있긴 하지만
요즘 누가 신을 믿어요?
그래, 신은 존재하니?
난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속의 영상에 사로잡혔다
선명하고도 자존심 상하는 꿈이었다
부인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무엇이 있었는데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내 마음을 꿰뚫었다
거울을 본 적 있어요? 없죠?
당신 진면목을 보여드리죠
죽음을 앞둔 소심한 노인이죠
내 인생은 이제 시작인데
속상하세요?
아니, 그렇지 않아
당신은 속상해 해요 진실을 견딜 수가 없어서요
내가 배려해서 보여준 진실 탓에
진실이 가혹할 거예요
그래...
아뇨, 당신은 몰라요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지 않아요
거울을 다시 들여다보세요
눈을 돌리지 말고
안 돌릴게
내 말 들어요
난 지그프리트와 결혼해요
우린 마치 게임처럼 사랑해요
당신 표정을 잘 들여다봐요 웃어 봐요
그래요! 웃어 봐요
괴로워!
퇴직 교수님이니까 왜 괴로운지 알아야 하는데
사실은 몰라요
당신은 많이 알지만 실은 아무것도 몰라요
갈게요
언니 아길 봐줘야 돼요
귀여운 아가
고요히 잠들어라
바람을 무서워하지 마
새들도, 까마귀도, 갈매기도
바다의 파도도 무서워하지 마
내가 곁에 있으니까 꼭 안고
무서워 마렴, 아가야
곧 날이 샌단다
누구도 널 해칠 수 없어
내가 이렇게 안고 있으니까
들어오십시오, 보르그 교수님
앉으십시오!
- 수험표는 가져왔죠? - 네
- 여기 - 네
현미경을 보고 박테리아 종류를 말해 보세요
현미경이 고장 난 것 같소
이상 없어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이걸 읽어보십시오
무슨 뜻이죠?
모릅니다
교수님?
난 의사지 언어학자가 아니오
칠판에 쓴 것은 의사의 첫째 의무 사항입니다
의사의 첫째 의무가 뭐죠?
생각할 여유를...
천천히 생각해보십시오
의사의 첫째 의무는...
생각이 안 나오
의사의 첫째 의무는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맞아! 이제야 생각났소!
당신은 고소당하셨습니다
고소를 당해요?
고소된 이유를 모르시는군요
무거운 죄입니까?
꽤 무겁죠
난 심장이 약한
노인일 뿐이오, 알만 씨
관대한 처우를 부탁하오
그런 기록은 없는데요
시험을 포기하겠소?
안 돼요!
이 환자의 병명을 밝히고 처방을 내리시오
환자는 죽었군요
뭘 적으십니까?
- 최종 결과요 - 결과라니...
'자격 없음'
자격이 없다뇨?
소소한 문제로 고발당한 건도 몇 개 더 있군요
- 죄목은 무정함, 이기주의, 냉혹함 - 네?
부인께서 고소하셨습니다
곧 대면하실 겁니다
오래 전에 죽었는데요
농담인 줄 아시오?
어서 따라 오십시오
순순히 따라오시죠
30년 전에 죽은 이 여인을 더러는 희미하게 기억하겠지만
당신도 전부를 기억할 순 없겠죠
하지만 이 장면만은 언제라도 기억해 낼 수 있을 거요
1917년 5월 1일, 화요일
당신은 여기 서서
부인과 남자의 행동을 다 봤소
집에 가서 남편한테 이르면 그인 이렇게 말하겠죠
'가없어라, 당신 정말 안됐구려'
자기가 신이나 된 것처럼
그럼 난 울면서 말하겠지 '정말로 절 동정하세요?'
남편은 '정말 너무 안됐어'
내가 더 흐느끼며 용서를 구하면
이렇게 말하겠지
'용서할 게 뭐가 있어야지'
하지만 그건 다 빈말이죠
그인 얼음처럼 차니까
그러다 남편이 갑자기 부드러워지면
난 소리 지를 거고 그인 돌겠죠
그이의 위선은 역겨워요
남편은 진정제를 갖다 주며
다 이해한다고 말하죠
내 꼴이 그이 책임이라 대들면
그땐 자기 탓이라고 말하죠
조금도 신경 안 쓰면서...
얼음처럼 차니까
아내는 어딨소?
알다시피 사라졌죠 모두들 사라졌죠
침묵이 들립니까? 모든 걸 제거했죠
외과 의사의 걸작품이죠 고통도
출혈도, 진통도 없소
정말 조용하군요
완벽한 업적이죠, 교수님
난 어떤 벌을 받소?
모릅니다 흔한 벌이겠죠
흔한 벌?
네, 고독요
고독이라...
네, 외로움이죠
관대한 처분은 없소?
모릅니다 저한테 묻지 마십시오
뭐냐?
애들이 좀 쉬재요 저기 있어요
비가 내리는군
오늘이 무슨 날인지 말했더니 축하를 드리겠대요
축하는 무슨...
푹 주무셨어요?
그래, 그런데 꿈을 꿨다 최근 들어 이상한 꿈만 꾸는데
- 정말 이상해! - 왜요?
깼을 땐 듣기 싫은 말들을 들어
무슨 말을요?
내가 죽었대 이렇게 살아 있는데
아버님과 에발트는 비슷해요
전에도 네가 그랬지
에발트도 똑같은 말을 했어요
나에 대해서? 그 앤...
아뇨, 그이 자신에 대해서요!
이제 겨우 서른여덟인데?
다 말씀드릴까요?
그래 주면 고맙겠구나
몇 달 전에 남편과 얘기하러
바닷가로 차를 몰았죠
지금처럼 비가 왔고 아버님 자리에 앉아 있었죠
자, 날 이렇게 납치해 왔는데 할 말은?
나쁜 얘기야?
말을 안 하길 바랬어요
그래? 딴 남자가 생겼군
유치한 소리 말아요
침통한 목소리로 할 말 있다고 바닷가까지 오더니
말을 꺼내지도 못하는군
세상에! 빨리 뭔지 말해 봐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재밌네요
무슨 말을 예상했죠?
살인이나 공금 횡령이라도 한 줄 아세요?
나 임신했어요
확실해?
어제 의사가 그랬어요
그래? 그게 비밀이었군
분명히 말하는데 난 낳겠어요
- 정말 낳겠다고? - 결심했어요!
아긴 안 돼
나와 애 중 선택해
- 가엾은 당신... - 그런 소리 마!
애를 낳는 게 가엾은 거야
우리보다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 그건 핑계예요 - 뭐라던 상관없어
난 지옥 같은 결혼 생활에서 나온 원치 않은 생명이었어
아버진 날 친자식인지조차 의심하셔
그렇다고 이래도 되나요?
병원에 돌아가야 돼
더 이상 이런 일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겁쟁이!
맞아
난 사는 게 구역질 나
날 하루라도 더
살도록 만드는 끈은 싫어
난 말하면 지키는 거 알지?
그건 잘못이에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어
인간은 각자 필요에 따라 행동해
우리의 필요는 뭐죠?
당신의 욕망은 살아서 사랑하고 생명을 창조하는 거지
당신은요?
난 죽는 것 완전히 죽어 버리는 것
담배 피우고 싶음 피우렴
왜 나한테 전부 말하는 거니?
시할머님하고 아버님을 바라보다 두려운 생각이 들었어요
무슨 말이냐?
이렇게 생각했어요 저분이 어머니시구나
얼음장 같은, 나이든 여자
죽음보다 더 무서운 여자
그녀의 아들과는...
둘 사이는 하늘과 땅처럼 멀고
아들은 자길 살아 있는 시체라 하고
그의 아들 에발트는 점점 외롭고 차갑게 죽어 가고
제 뱃속의 아기를 생각했어요
아이를 기다리는 것도 냉혹함과 죽음과
고독뿐이라는 걸
그런 것들은 이제 끝나야 해요
지금 에발트한테 가는 길이잖니
그이 말대로는 않겠다고 말하려고요
아기를 낳겠어요 아무도 제 아길 뺏을 수 없어요
가장 사랑하는 그이조차도요
내가 도와줄까?
아무도 못해요
우린 나이도 많고 너무 늦었어요
얘기한 후엔 어떻게 됐니?
그냥 헤어졌어요
너한테 연락이 오냐?
- 아까 그들처럼 되긴 싫어요 - 알만 부부?
그 부부는 너무나 비참해요
나도 그 부부를 생각했다
내 결혼 생활도 비참했거든
하지만 저희는 사랑해요
오래 사세요 오래도록
오래 오래 백 년이 넘도록
오늘 학위를 받으신다죠
이 꽃다발로 할아버지께서
50년간 의사 생활하신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말 존경해요 얼마나 지혜로운 분인지도 알고요
훌륭한 분을 알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행복해요
고맙다, 고마워
이제 가야겠다 시간이 다 돼 가
드디어 오셨군요 안 오시나 포기하고 있었어요
오시는 길은 편안했어요?
어서 연미복으로 갈아입으세요
어서 와요, 마리안 에발트한테 온다고 말했어요
그래요? 고마워요
아그다 씨, 결국 왔구먼
와야겠기에 왔지만 저 혼자 오니까 재미없었어요
- 어서 오세요, 아버지 - 잘 있었니?
보다시피 네 처도 같이 왔다
- 당신 왔어? - 짐은 이층으로?
- 아버진 전처럼 손님방에... - 그게 좋겠다
- 이리 주세요, 무거우실 텐데 - 아냐, 괜찮아
젊은이들은 여기서 좀 기다려요
- 여행은 좋았소? - 즐거웠어요
저 애들은 누구야?
잘은 모르는데 이탈리아로 간대요
- 싹싹해 보이는군 - 그래, 아주 괜찮더구나
벌써 4시 15분이에요
제가 새 구두끈을 샀어요
내일 떠날 거니까 염려 말아요
- 호텔로 갈 거요? - 아뇨, 왜요?
우리 둘이 하룻밤만 더 같이 침실을 쓸 수 없을까요?
- 짐 푸는 것도 도와주고... - 당신을 뜻밖에 만나니까
반갑군
나도 그래요
우리도 이따 수여식에 갈 거죠?
당신도 간다고 연락할게 준비해
서두르세요, 교수님!
이삭 할아버지!
식이 거행되는 동안
오늘 일어났던 일들이 계속 뇌리를 스쳤다
그날 있었던 모든 일들을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이 우발적인 사건들 속에서
어떤 심상찮은 필연성을 깨달았던 것 같다
식은 좋았소?
아주 많이요
피곤하지 않소?
피곤하네요
- 내 수면제 한 알 들어요 - 아뇨
아그다 씨 아침엔 내가 좀 심했소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 왜?
글쎄요 이상한 말씀을 하셔서
미안하다는 소리가 별나 보이오?
- 물 좀 더 드릴까요? - 괜찮소
창문을 조금 열어 둘게요
자, 이제 됐습니다!
어쨌든 고마워요, 교수님 안녕히 주무세요
- 아그다 씨 - 왜요, 교수님?
우리 서로 안 지도 오래됐으니
자연스럽게 말을 놓는 게 어떻겠소?
안 돼요 전 그렇게 못해요
왜 안 돼오?
- 교수님, 이 닦으셨어요? - 닦았소
호의는 고맙지만
전 이대로가 좋아요 이게 편해요
이봐요 이제 우린 늙은이오
교수님은 그러시겠지만 여자는 소문에 민감하거든요
- 말을 놓으면 사람들이 뭐라겠어요? - 뭐라기는 뭘 뭐래?
저희를 놀릴 거예요
언제나 당신이 옳다는 말이지?
거의 옳아요
우리 나이가 되면 점잖게 행동할 줄 알아야죠
잘 자요, 아그다 씨
안녕히 주무세요 문은 열어 놓고 갈게요
무슨 일이 있으면 깨우세요
- 안녕히 주무세요 - 잘 자요
이삭 할아버지! 오늘 너무 멋있으셨어요
훌륭하신 분을 알게 돼 영광이에요
함부르크까지 차편이 생겼어요 쉰 살의 여집사님인데
- 얘가 반했대요! - 닥쳐!
안녕히 계세요
잘들 가게 그 동안 고마웠네
이삭 할아버지, 안녕!
정말 할아버지를 사랑해요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도 잊지 않으마
이제 가자
- 안녕히 계세요 - 잘 가게, 빅토르
- 안녕히 계세요 - 잘 가게, 안더스
이젠 정말 가야 돼요
소식들 주게나
- 주무시나 봐요 - 에발트!
네, 아버지
벌써 다녀왔니?
아뇨 처의 구두 굽이 떨어져서요
춤추러 갈 거지?
네
- 어떠세요? - 괜찮아, 아주 좋아
- 심장은요? - 아주 좋아
안녕히 주무세요
에발트, 잠깐 앉거라
특별한 말씀이라도?
네 처랑 어떡할 거냐?
물어봐서 미안하다만...
모르겠어요
- 내가 관여할 바 아니다만... - 네?
하지만...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 말은...
- 그 사람 없이는 못 살아요 - 너 혼자서는?
처 없이는 못 삽니다
알겠다
처가 결정해야죠
네 처는 뭐라던?
생각해보겠대요
전에 네가 꾼 돈은 이제...
걱정 마세요 갚을 테니까
- 내 말은 그게 아니라... - 꼭 갚겠어요
저예요!
좀 어떠세요, 아버님?
예쁘구나
구두 굽이 떨어져 이걸 신었어요
아주 멋있다
- 같이 와 줘서 고맙다 - 저도요
난 네가 좋다, 아가
저도 아버님이 좋아요
불안하거나 슬펐던 날은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종종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날 밤도 그랬다
이삭 이젠 산딸기 없어요
당신 아버지를 찾아보래요
우리 먼저 배타고 가다 당신을 태울게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못 찾겠어
내가 도와줄게요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