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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 : 안녕하세요
정말 영광스럽게도
오늘 TEDxSeoul의 문을 열게 된 다이나믹 듀오입니다.
저는 최자이고요.
개코 : 네. 전 개코입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박수)
정말 많이 긴장이 되네요.
왜냐면 저희는 항상 무대 위에서 공연하던 입장에서
오늘은 강연을 하러 나왔는데 흔치 않은 자리고
굉장히 영광스런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긴장되는 건 사실입니다.
최자 : 예 사실 저희는 무대 체질인데
오늘 같이 떨리는 적은 처음인 것 같네요. 진짜로.
개코 : 그렇습니다.
최자 : 분명히 중간에 실수도 많이 있을거고 덜컹덜컹 할거에요.
그런데 좀 이해해 주시고 이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코 : 저희가 어떤 주제로 여러분께 이야기를 해드릴까 굉장히 고민을 하다가
처음에는 랩 음악으로 본 서울의 10년사에 대해서 준비를 했었어요.
(웃음)
최자 : 왜냐면 저희가 저희 음악을 봤더니 저희가 2000년도부터 시작을 했거든요?
그때 그때마다 서울에 관련된 노래들이 앨범마다 다 있고
정말 서울이 바뀌는 모습이 너무 잘 자세히 표현이 되어있는 거에요.
랩에는 가사가 워낙 많다 보니까 사진 같이 보는걸 묘사해야 되서
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되게 잘 표현되어 있더라고요.
개코 :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희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고요.
(웃음)
그러다 저희가 저희 음악을 면밀히 살펴보니까
저희가 데뷔하고 한 3년 동안 서울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얘기는 했지만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서울의 모습들, 환경들, 이런 것들을 바라봤더라고요.
최자 : 많이 부정적이었죠.
개코 : 이후 활동에서는 서울에 대한 얘기가 그렇게 많지 않고요. 그러다 보니까
최자 : 강연을 이끌어가기에는 저희가 좀 너무 우울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주제를 바꿨습니다.
생각, 음악 그리고 삶인데요.
저희의 실생활이 그대로 음악에 반영이 되다 보니까
자료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아 서울이 바뀌기보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더 많이 바뀐 것 같아.
우리가 생각하는게 바뀌었더니 우리가 하는 음악도 바뀌었고
지금 다시 되돌아보니까 우리의 인생도 많이 바뀐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활,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것에 대해 우리가 지금까지 한 10년동안 쌓아온 데이터베이스,
저희의 활동했던 사진 자료들 그리고 음악들을 토대로 한번 여러분들에게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개코 : 저희가 세 가지 챕터로 나눠봤는데요.
첫번째 챕터는 저희가 다이나믹 듀오 이전에 CB MASS라는 팀으로
활동을 해서 세개의 앨범을 냈었는데 그때의 활동
그리고 해체 전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봤고요.
그리고 두번째 챕터는 다이나믹 듀오 활동을 시작으로 입대 전까지
(웃음)
활동, 음악들의 이야기를 저희 생각의 변화를
최자 : 입대 전과 후는 정말 많이 달라요.
개코 : 그렇습니다. 세 번째 챕터는 전역 후에 앨범 발표 후 저희의 음악적인 생각 그런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최자 : 제일 먼저 지금이랑 환경이 정말 많이 다를 땐데요.
CB MASS 시절입니다. 저희가 2000년도에 결성을 했고요.
그때는 언더그라운드에서 바로 메이저로 올라와 앨범을 냈기 때문에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던 시절이에요.
개코 :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굉장히 저희는 다시 한번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강남에서 자랐습니다.
(웃음)
굉장히 유복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최자 : 유복하지는 않았고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개코 : 말을 잘못했네요. 사회적으로 불만이 많았던 것 같아요.
왜냐면 음악적인 태동 자체가 흑인 음악이고 흑인들의 가난함
이런 것들이 뿌리가 됐던 음악이기 때문에
그 음악을 저희가 듣고 자라서 그런지 가난함에 대한
일종의 그 멋스러움
최자 : 힙합음악이란 자체의 코스튬 플레이를 했던 것 같아요.
비판하는 것 자체에 많이 중독이 되었고
비판을 위한 비판을 좀 많이 하던 시절인데
그때 저희 마음가짐이 활동하던 사진에도 엄청 잘 나타나 있어요.
보시게 되시면 대단히 (웃음)
개코 : 굉장히 미간이 많이 구겨져 있죠?
최자 :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어보이는 것 같아요.
개코 : 밑의 사진 같은 경우에는 매체 특성에 관계 없이
저 매체는 주니어라는 초중생들을 타겟으로 한 잡지입니다. (웃음)
근데 제 오른쪽 사진 같은 경우는 모자가 어머님들 하시는 파마캡이에요.
저런 모자를 쓰고
최자 : 길거리에서 파마모자를 쓰고
개코 : 인터뷰를 하곤 했습니다.
최자 : 사실은 사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그러고 다녔어요.
개코 : 그렇습니다.
최자 : 저는 그때 스타킹을 쓰고 있었고요.
개코 : 어머님 팬티스타킹이었죠.
최자 : 그러니까 이 당시에는 세상을 되게 좁게 봤죠.
사실은 그게 좁게 봤기때문에 상당히 날카롭고
비판적으로 보기도 했었는데 너무나 한쪽면으로만
세상을 보지 않았나. 부정적인 측면에 좀 많이 집중되어 있던 것 같아요.
개코 : 좀 가사를 살펴보죠
최자 : 데뷔곡이 나오네요
(음악 : 나침반 - CB MASS)
'변화를 원해 좀 더 진실한 인간이 되길 원해.'
되게 의미심장하잖아요.
근데 실제로 뭐가 어떻게 변해야 되는지 뭐가 잘못된지는 잘 모르고
우선 '이거 좀 짜증이 나는 것 같아' 불평 불만을 되게 많이 하고 싶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개코 : 결론으로 도출하진 않고요. 그냥 정말 비판을 위한 비판을 했던 가사들이 굉장히 많이 있어요.
그래서 데뷔 후 다른 곡들 가사를 좀 살펴보면
최자 : 깨끗한 공기 대신 회색 먼지뿐야
개코 : 그 당시 굉장히 서울의 모습이 개발 붐이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여러 곳곳에서 공사를 하고 건물을 짓고 굉장히 먼지가 많았어요.
그래서 그 먼지가 많은 현상을 가지고 가사에 비판을 했었고요.
최자 : 노래가 '서울은 계속 공기가 안좋아. 이런데 사는 거 너무 힘들어.'
이런 내용이 2001년도부터 2004년도까지 줄줄이 계속 나오는데
조사하는 과정에서 봤더니 그 당시가 황사가 가장 심하던 시절이었대요.
(웃음)
특별히 어쩔 수 없는 이야기인데 그냥 무조건 싫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개코 : 다음 가사를 보면
최자 : 이 얘기는 여기서 편하게 해도 될 지 모르겠네요.
카드대란이 있던 시기에요. 2003년도
무분별한 카드 발급으로 인해 신용 불량자가 상당히 많아졌던 땐데
그러다 보니까 윤락 업소로 빠지는 여성분들이 되게 많았어요.
원래 그 전부터 그랬지만 신사동같은 경우에는 24시간 영업소들이 더 많아지고
거기엔 언제나 윤락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분들이
되게 많이 계셨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대해 되게 많이 비판적으로 봤었나봐요.
개코 :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볼려고 많이 노력을 했던 시기였던 것 같고요.
최자 : 정말 저희는 정말 잘 몰랐다는게 어찌 보면 컴플렉스가 됐던 것 같아요.
오히려 더 그렇게 하려하지 않았던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개코 : 다음 가사도 한번 보죠.
음반업계에 대한 비판도 많이 했었어요.
그때는 굉장히 거대 기획사들의 횡포도 있었고
지금도 인기는 많지만 아이돌 그룹들이 그 당시 굉장히 인기가 많았거든요.
최자 : 왜냐면 그때 처음으로 아이돌 그룹들이 데뷔를 해서
인기를 얻기 시작할때에요. 2001년도가.
큰 기획사들이 작은 기획사들을 잠식하고 있고
음악시장에 다른 장르성있는 음악들이 거의 멸종되기 시작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런거에 대해서 피해의식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개코 : 저희 장르가 멸종 위기의 장르였거든요.
그래서 가사에서 그것에 대한 컴플렉스도 느껴집니다.
다음 가사를 또 보시면 사랑에 대해서도 불평 불만이 많았어요.
최자 : CB MASS가 앨범을 세장을 냈거든요?
거의 유일한 사랑 노래인데 그것도 사랑의 부정적인 측면
개코 : 물질 주의, 물질 만능 주의에 사랑에도 불평 불만을 많이 했었고요.
최자 : 하지만 이때 음악이 지금 다시 봐도 날카롭게 보고 있기 때문에
어떤 단면이지만 그 단면에 대해 분석을 잘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웃음)
개코 : 대중의 사랑은 많이 받지 못했고요.
최자 : 되게 단편적인 사랑을 많이 받았죠.
개코 : 일부의 매니아들을 양산을 했었죠.
최자 : 그렇게 지내다가 2004년도였죠?
개코 : 불의의 사건으로 저희가 해체를 하게 됩니다.
최자 :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CB MASS가 해체를 하게 되는데요.
그때 해체하는 과정에서 음반사하고 불협화음이 너무 심해가지고
저희가 갑자기 손해 배상을 해야하고 이런 일이 많이 생겨서
그때 처음으로 가난이 뭔지 좀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밑바닥을 쳤다고 볼 수 있죠. 정말 소주 맛이 달구나 라는 걸 처음 그때 느끼기 시작했고
정말 밑바닥이었는데 되게 신기한게 사람이 이렇게 비판적으로 보다가
밑바닥을 진짜 찍고 나니까 오히려 더 세상을 중립적으로 보게 되는
그런 감각이 생기더라고요. 반등하는 것 같이
개코 : 다이나믹 듀오로는 다섯 장의 앨범을 내고 저희가 입대를 했는데요.
이 때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뀌어서 그런지 어떤 매체에 노출되는
저희의 이미지도 굉장히 유쾌해지고 좀 미소도 머금게 되고
좀 익살 스럽기도 하고 그런 모습들을 많이 대중들에게 보여드렸던 것 같아요.
최자 : 저희가 생각하는게 바뀌니까 자연스럽게 표현이 됐던 것 같은데
아까 사진에 비해서 상당히 밝아진걸 볼 수 있거든요. (웃음)
개코 : 저희가 웃기 시작했습니다.
최자 : 미간의 주름들이 좀 없어졌죠.
(웃음)
개코 : 굉장히 유쾌하죠.
(웃음)
최자 : 이때부터 웃으면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고
뭔가 웃음을 통해서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구나 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음악도 좀 더 대중적이 됐고
(음악 :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 다이나믹 듀오)
지금 들으시는 노래는 3집에 수록됐던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이란 노래인데요.
이 노래의 주제는 낙태였습니다.
사실은 저희가 CB MASS시절엔 뭔가 부정적인 측면만 얘기하거나 그랬을텐데
저희가 그런 주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우리가 옳다 그르다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럴 주제는 아닌 것 같지만
사람들이 이거에 대해서 정말 현실적인 주제잖아요.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누구나 한번 쯤은 고민해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것들이 자꾸 안 보는 척하고 뒤로 숨겨놓는 것 보다는
다시 한번 꺼내놓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런 주제들을 좀 던지는 역할을 하는게 어떨까
생각을 하게되는 시점이어서
개코 : 많은 연령계층의 이야기들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랩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자
결론은 제시하지 않더라도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더라도
많은 분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좀 남겨놓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앨범 전반적으로 굉장히 이야기들이 많아요.
최자 : 이 곡같은 경우는 두 남자라는 곡인데요.
이 당시가 명퇴 바람이 좀 불던 시기입니다.
저희 집 앞 공원에도 양복입으신 50대 신사분들이 되게 많이 있었었고
사회적으로 약간 집에다가 자신이 명퇴한 걸 얘기를 못해서 도시락 싸와서
밖에서 드시고 시간 때우다 가시는 분들도 많이 있던 시절인데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얘기를 많이 좀 하고 싶었나봐요. 그래서 이런 가사들이 있었고요.
개코 : 그 당시에는 굉장히 경쟁이 과열이 돼서 사회생활에 지친
젊은 친구들의 지독한 고독 그리고 외로움들을 표현해 본 곡이고요.
그걸 또 이야기로 한번 풀어봤고요.
최자 : 그땐 자살 붐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많이 표현해 보고 싶었던 것 같고
사실 이런 노래들을 방송에서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심의에 한곡도 통과가 안되서...
개코 : 이 자리를 통해서 저희가...
최자 : 사실은 저희가 이 당시때 방송을 했던 곡들은
Ring My Bell 이라던지 출첵이라던지 사람들에게
굉장히 힘을 주는 밝은 노래들 위주였는데
사실 저희가 보여드리고 싶었던 건 이런 노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개코 : 이 노래 같은 경우에도 사는게 굉장히 냉정하고
경쟁위주의 삶이다 보니까 인간애가 필요하단 걸 저희가 좀 느꼈어요.
그 매개체가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니까 어머니의 된장국이라는게
인간애의 회복 이런 메세지를 여러분들께 전달할 수 있겠다.
그러다보니 어머니의 된장국이라는 노래를 만들게 됐죠.
최자 : 이 노래는 반응이 되게 괜찮았어요.
이 노래는 가사 수위가 너무 높지 않은 편이어서 방송을 좀 할 수 있었거든요.
되게 슬픈 장면이 나오는데요 (웃음)
웃고 있는데 마음속으로는 울고 있었어요 완전히.
개코 : 마음 속은 거의 썩어들어갔죠.
저희가 입대를 했죠.
서른살에 저희가 동반 입대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루고 싶었던 꿈이라던지 음악이라던지
잠시 내려놓고 국가의 부름을 받아서 입대를 하게됩니다.
최자 : 열심히 봉사를 했고요. 사실은 쉽지는 않은 기간이었어요.
왜냐면 정말 저희가 어느정도 사회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구조적으로 올라갔다고 생각하던 시점이었는데
다시 말단으로 들어가서 시작해야하니까
나이는 너무 많이 먹었고 좀 쉽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그때 저희가 깨달은 게 뭐가 있냐면
'아 이 전에는 외부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많이 노력을 했었는데
환경이라던지 외부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는건 아니구나
내 내면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가 있구나' 라는 걸 깨달았어요.
왜냐면 거긴 외부에 정말 아무것도 없거든요.
개코 : 그래서 굉장히 행복한 군 시절의 사진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웃음)
다행스럽게도 기자님이 저희 초상권을 보호해 주셔갖고 인터넷에는 모자이크 됐었고요.
최자 : 저희를 모르셨던 것 같아요.
(웃음)
개코 : 계급도 이병이네요.
최자 : 까마득한 시절인데...
개코 : 그렇게 행복한 군 생활을 마치고 저희가 2011년에...
정말 행복해 보이죠?
물론 전역해서 행복한건 아니고요. 정말 군생활에서 많은 걸 깨달았기 때문에
최자 : 깨달은 미소에요. 깨달은 미소.
개코 : 2011년에 저희가 전역을 하게 됩니다.
군대에서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시각이 또 달라지고
최자 : 그런 것들이 또 저희 음악에 삶에 많이 반영이 됐는데요.
이 시절의 사진을 보시게 되면 좀 더 자연스러워졌어요.
가짜로 웃는게 아니라 진짜로 웃기 시작하고 여러가지 활동들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어요.
저희가 음악만 잘한다고 생각하고 음악만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다른 일이 들어오면 "재미있게 해도 될 것 같아."
예능에 잠깐 나갈 일이 생기면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은 나가서 보여주고
그런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즐거우면 그것도 되게 의미있는 일인 것 같아."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죠.
개코 : 생각이, 매체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유연해졌고 생각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던 것 같아요.
음악에서도 표현되는 가사의 내용같은 것들이 많이 긍정적인 가사들이 많이 생겨나게 됩니다.
최자 : 그리고 개코같은 경우에는
개코 : 저 같은 경우는 군대에서 결혼을 했어요.
그래서 군대 전역후에 바로 애기가 나왔고요.
최자 : 그때 속도 위반 종결자라는 별명을...
개코 : 속도를 좀 많이 냈고요.
(웃음)
애가 잘 안 자요.
그러다 보니까 새로 나온 앨범들에는 아이의 아빠로
한 여자의 반쪽으로써 쓸 수 있는 가사들이 있더라고요.
굉장히 제 감정에 많이 집중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새 앨범에는 아들에게 보내는 가사들도 있고요.
최자 : 전에 같은 경우였으면 '다이나믹 듀오로서의 음악을 해야해.
우리 듀오의 색깔이 있으니까.' 이런 느낌으로 서로 좀 자제하는 것들이 있었고
사회현상 부분에선 '이런 이야기를 하자.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자.' 라는게
저희 주제였는데 저희가 6집 부터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기한테 솔직히 했을때
정말 저한테 솔직한 얘기를 했을때 여러분의 반응도 더 많이 오는 것 같더라고요.
좀 더 공감해 주시는 것 같아서 그런 얘기를 많이 했고
되게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앨범이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뒀고요.
저희 시트콤 출연했을때 모습입니다.
사랑의 미학이란 곡인데 아까 저희가 보여드렸던
CB MASS 시절 사랑 노래하고는 좀 사뭇 다릅니다.
중립적인 것도 아니고 이번에는 사랑의 긍정적인 부분을 바라보며
가사를 썼었거든요. 이 노래도 되게 반응이 괜찮았죠.
개코 : 이 노래는 해 뜰 때까지만 이란 곡인데 이건 최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에요. 총각으로서
최자 : 제가 주도해서 가사를 썼고요. 왜냐면 정말 저희 삶 속에 있는 일이고
짝이 없는 보통 남성들 같은 경우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마음에 드는 여자하고 좀 더 같이 있고 싶고
그런 얘기를 조금 더 솔직하게 표현해봤는데
이런 식으로 개인의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저희가 앞으로 해야할 일이 아닌가 생각을 하고
이런 작업을 많이 하게됐습니다.
개코 : 이 노래도 마찬가지로 아까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제 아들에게 보내는 가사에요.
보셨나요?
잘 안자요. 애기가.
(웃음)
최자 : 이렇게 우리 얘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우리 얘기들에 집중해서 열심히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한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공통 분모가 많기 때문에
상당히 이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앞으로는 좀 더 이런 식으로 발전하게 될 것 같고
그런 것들이 앞으로도 표현되고 있고 저희가 사실 이번 이야기로 말씀드리고 싶었던 건
저희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니까 생활도 달라졌고
그런 것들이 음악에 잘 반영이 되있다는 걸 좀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조금씩 보다보면 부정적인 측면으로 보다가 중립적인 측면에서 보고
마지막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보게 되었는데 인생도 그렇게 바뀌더라고요.
행복의 질도 그렇게 또 높아졌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떤 식으로 보고 있으시던지 간에
조금 더 긍정적인 부분을 보려 노력하시면
앞으로 인생도 좀 더 긍정적으로 될 거라는 그런 얘기인데
어떻게 설명이 잘 됐는지 모르겠네요.
개코 : 네 지금까지 다이나믹 듀오였습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