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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매튜스 씨께, 매튜스 씨의 친가족에 관한 정보를 나누고자 연락드립니다.
또, 매튜스 씨의 형인 기성 씨는
사실 매튜스 씨의 쌍둥이 형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뭐?!
이 프로젝트는 약 일 년 전에 시작되었어요.
세계한인입양인협회(IKAA) 관계자 분이
이번 대회에서 공연 해달라고 전화 한 통이 왔었어요.
그 당시 저는 그 협회가 뭔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그 대회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다른 입양인들과 얘기하기 시작했어요.
그 입양인들은 자기 모국에 대해 알게 되는 것과
친가족을 만나게 된 경험들에 대한
정말 놀라운 이야기들을 해줬어요.
어떤 면으로는 제 친가족을 찾을 기회가
어떤 면으로는 제 친가족을 찾을 기회가 이때뿐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아요.
그 이후 어찌어찌하여
제 동료인 제이슨 황과 얘기하게 됐어요.
댄의 첫 출근날 사무실에서 만났어요.
댄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댄을 안내할 사람이 필요할 거란 걸 알았어요.
한 육 개월 전, 제가 한국에 가게 될거란것을 알았을 때
제 친가족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동방사회복지회에서
친가족 조사를 시작하는데 필요한
서류들을 보내줬어요.
[한숨] 그리고 내 한국 이름은 박인수.
이게 동방사회복지회에서 보낸 거에요:
중앙입양원에서 조사 결과를 받은 후,
귀하의 친모에 대한 정보와 일치하는 한 분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분께서 귀하의 친모가 맞다고
확인 전화를 주셨습니다.
내가 누구한테 이거에 대해서 얘기할 때마다
반응이 좋았던 적이 없어.
다들 찾게 될 일은 없을 거야 라는 식으로 얘기했었어.
이것 봐, 나 지금 떨고 있어 [웃음]
"댄 매튜스 씨께,
매튜스 씨의 친가족에 관한 정보를 나누고자 연락드립니다.
부모 두 분께서 어제 저희 사무실을 방문하셔서 직접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분께서 매튜스 씨에게 보낼 편지와 사진들도 보내주셨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다시피, 두 분께서는 결혼한 상태셨고 아직도 결혼 상태이십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셨습니다.
또, 매튜스 씨의 친형제인 기성 씨는
사실 매튜스 씨의 쌍둥이 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뭐?!
와 야…
이거 완전... 너 쌍둥이...! [책상 친다]
이거… 완전 미쳤다.
너 여동생 경찰이야. 너 쌍둥이형 너랑 똑같이 생겼어-
아니야! 닮았어?
닮았어! 너랑 완전 똑같아!
그래도 일단 현실적으로,
그 사람들이랑 안 만날 가능성도 크고
또 하나는 유전자 검사를 먼저 해야 될 것 같아.
최대한 빨리 그 검사를 진행해야 돼.
아직 모르겠어. 그냥 엄청나게 이상한 우연일지도 몰라.
근데 또 여태까지
동방사회복지회랑 연락한 거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모든 일은 꽤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진행된 거 같아.
그러니까 이게 진짜 일 수도 있다는 말이지.
정말로.
제 이름은 린 매튜스 이고 저는 댄의 어머니입니다.
저와 제 남편은 1977년에 결혼했어요.
당시 저는 27살이었고 남편은 28살이었어요.
저희는 바로 가족을 꾸리고 싶었지만 계속 임신에 실패했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1979년에 난소암 말기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들은 제가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저는 계속 버텼죠.
실험적인 치료를 많이 받았고
한 세 차례의 수술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자궁 절제술도 받았어요.
사람들은 제가 살아남지 못할 거고 생각해서
입양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기관에서는 제가 만약 5년을 버틴다면 고려해보겠다고 했죠.
그 5년의 기간이 끝나는 바로 그 날, 저희는 입양하기로 했어요.
제가 댄을 처음 본 날, 저는 완전 신이 난 상태였어요.
그 날에 찍힌 제 사진들을 보면 마치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잔 마냥 눈이 아주 동그래진 걸 볼 수 있을 거에요.
저는 매튜스 가족의 일부분이 아니었던 때를 기억하지 못해요.
이 가족은 언제나 저의 일부분이었어요.
사실 자라면서 제가 입양아라는 사실은 꽤 멋지게 다가왔어요.
제가 조금 다르다는 사실,
제 부모님이 조금 다르다는 사실,
또 저희 가족이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드렸었어요.
그리고 그 다르다는 것을 항상 좋게 받아드렸어요.
학교 다닐 때 제가 입양아였다는 사실 갖고 누가 뭐라한적은 없었어요.
제가 동양인이라는게 조금 더 컸던 것 같아요.
제 부모님이 백인이라는 사실 보다도
그냥 제가 동양인이라는 것에 대해 더 많이 반응했었어요.
댄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모든게 괜찮았던것 같아요.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도 있었고 그랬는데
중학교 다니기 시작할 때 쯤 꽤 큰 변화가 있었어요.
당시 많이 힘들어 했었어요.
저는 그때 뭐 때문에 그랬는지 완벽히 이해하지를 못했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제 정체성에 대해
가졌던 혼란을 글쓰기로 많이 풀었었어요.
그래서 이것 저것에 대해 글을 많이 쓰기 시작했었어요.
그러다가 흥미롭게도 제가 다닌 학교의 유일한 흑인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제가 기억하는게 하루 그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그 친구의 음악과 비트를 듣게 되었어요.
저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멋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서 곡을 쓰기 시작했죠.
제 첫 앨범을 내는데 그 친구가 도와줬어요.
앨범 자체는 정말 별로에요.
아무도 듣지 못하게 할거에요.
하지만 당시에 기분은 정말 끝내줬어요.
제가 음악을 직접 녹음해 음반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어요.
지금 비행기를 타기 약 30시간 전인데
정말 너무 벅차 감당이 안되요.
좀 많이 불안한거 같애요.
한국에 가고, 그 가족을 만나고 또 다른 입양아들을
만날거란 생각에 굉장히 불안해요.
나쁜 상황들이 일어날 수도 있고. 뭐던지 나쁜 일이 한번쯤은 일어날거라고 생각해요.
그 가족이 가난해서
저한테 돈을 요구할 수 도 있고, 그 남매가 저를 싫어할수도 있죠.
왜 굳이 28년 후에 다시 찾아온건지 의아해 할 수 도 있어요.
정말 그 남매가 저를 아예 안좋아할 수도 있어요.
아예 제 근처에 오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물론 부모가 저를 만나라고 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저를 받아드릴 필요는 없어요.
그 사람들에게 저는 그냥 생전 못 본 이상한 사람인거잖아요.
감정적으로 정말 저에게 힘든 여정이 될거같지만
이제 나아갈 준비가 됐어요. 빨리 한국에 가고 싶어요.
댄이 친엄마를 만나게 되면
저는 그냥 댄이 얼마나 사랑받는 아이인지 그분께서 아셨으면 좋겠어요.
댄이 우리 삶으로 들어왔을때 저는 제 기도가 들어졌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분의 기도도 들어졌다고 생각해요.
댄은 정말 좋은 삶을 살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저희 둘을 보살펴 주셨다고 제가 생각한다는 것을 그분께서 아셨으면 좋겠어요.
짐 잘 싸고 있어?
거의 다 했어요. 뭐, 아직 좀 남았지만.
너가 너 가족한테 선물로
줬으면 하는 것들을 좀 가져와 봤어.
너의 친엄마가 이 사진을 보면 좋아할 거라 생각했어.
아빠가 공항에서 너를 처음 안았던 때야.
그때 정말 행복했던 게 기억나요.
너의 가족이 이 사진들을 보면 정말 좋아할 거 같아.
네, 좋을 것 같아요.
자, 한번 크게 안아보자, 아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기억하고
이 일이 너와 너의 다른 가족에게 정말 잘 풀리면 좋겠어.
이제 너는 두 가족의 사랑을 다 받게 되니까 행운아야.
너의 쌍둥이와 너의 여동생, 언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
아, 엄마,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다 괜찮을 거야. 다 정말 잘 될 거야.
"나의 아들에게, 이 편지가 너의 입양을 둘러싼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1983년 나는 여기 거제도에서 직업을 구했단다
당시 재정상황이 좋지 못해서 제대로 된 집을 구하기 힘들었단다.
1985년, 너의 어머니가 임신을 하고
집에서 조산사의 도움으로 출산했다.
일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쌍둥이 아기들을 미숙아로 태어나 건강이 안좋았고
아내는 쓰려져있었단다.
아기 둘 다 입원을 해야 했고 너의 어머니는 다시 일어서지를 못했다.
며칠이 지나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아기 한 명이 이미 회복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단다.
그 상황에서 나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단다.
아기를 해외로 입양 보내면
좋은 부모를 만나 좋은 가정 밑에서 자라고
아이에게 더 좋은 기회를 줄 수 있을 거라고 들었다.
너를 입양 보내는 것이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나의 아가에게, 내가 너를 낳았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고
너가 나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어.
기쁨과 슬픔으로 눈물이 멈추지를 않는단다.
너를 보낸게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얘기도 못하겠단다.
너와 너의 형을 낳았을 때 우리의 상황이 너무나 안 좋았다.
출산을 하고 나의 건강이 너무 안 좋아져 위태로운 상황이었단다.
그 상황에서 너의 아버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
너가 보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너를 다시 찾을 생각도 했지만
이미 입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나는 너가 그곳에서 더 나은 삶을 살 거라고 믿고 싶었어.
이 죄책감과 슬픔을 28년 동안 달고 살았단다.
하루도 빠짐없이 너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너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하나님께 항상 기도한단다."
"어머니께, 저는 동방사회복지회에서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감정적이고 기뻤어요.
다시 연락을 주셨다는 소식에 감사했고
제가 조사를 시작해서 행복하시다는 것을 듣고 기뻤어요.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소식은 제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미국에서 행복하고 사랑이 많은 가정에서 자랐어요.
곧 7월 29일부터 8월 9일까지
한인입양인대회에 참여하며 서울에 있을 예정이에요.
직접 만날 수 있게 된다면 감사할 것 같아요.
지금도 이렇게 연락이 닿았다는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겠고 이 소식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지 말도 못하겠네요. 잘 지내고 계시길 바라고
곧 만나길 기대할게요.
사랑을 담아, 대니얼 박인수.
드디어 이 MT가 뭔지 알아냈어요.
MT는 보통 한국에서 회사원들이 동료들과 어디 먼 곳으로 가서
그냥 술을 마시는 거예요. 그냥 술 마실 핑계를 만드는 거죠.
근데 이게 한국에서 정말 중요한 게 모든 사람을 동등한 위치에 서게 한다는 거에요. 결국 다들 그렇게 친해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