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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맞춰볼까요?
여러분이 왜 오늘 이자리에 앉아 계신지를요?
여러분은 여기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길 기대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길 원하며
즐거운 시간과 새로운 깨달음을 기대하죠.
비록 제가 방금 쉬는 시간에 봤던
몇몇 젊은 분들의 주 관심사가
쉬는 시간에 커피를 마시면서
혹시 만나게 될지도 모를
젊고 지적인 여성에게 쏠려있다해도 말입니다.
그것도 당연히 이곳에 온 합당한 이유가 되죠.
그러나 여러분이 전혀 예상하지 않은 것은
여러분들이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되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포장된
일련의 거짓말입니다.
여기 오신 여러분은
여기 무대 위에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거나
더한 경우 의도적으로 청중을 호도한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습니다.
TED가 그럴리 없죠, 그렇죠?
여긴 정당의 전당 대회장도 아니고
판매 회의를 하는 것도 아니며
사업을 논하는 곳도 아니니까요.
사실 그렇게 완벽하게 무해한 곳이 아닙니다.
보기엔 무해하지요. 극장이라는 현실 도피 형태에서는요. --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앉아있거나
극장 상황에 따라 서 있기도 하죠.
리가(라트비아 수도)에서 가장 훌륭한 이 극장에서요.
훌륭한 궁전 극장이죠.
훌륭한 궁전...
이 극장의 실제 이름이에요. 굉장히 멋있죠?
그러나 이 훌륭한 극장 의자에 앉아 너무 편해지기 전에
한 가지 주의를 드리죠.
오늘 저는 여러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려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똑바로 앉아
연사가 하는 말과 말하는 방식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려합니다.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요.
왜냐하면 전 확신하거든요.
오늘날 민주주의는 분해되고 있으며
그 이유는 시민들이 편히 앉아서
그저 안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편히 앉아 다채롭게 움직이는 화면을 보길 원하고
비판적인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려 하죠.
그런 비판력을 기르려고도 하지 않아요.
너무 편하니까요, 그렇죠?
TV에 나오는 식자층들의 장광설을 그냥 흡수하는게 편하죠?
전 인간이 너무나 피상적으로 되어가는 게 아닌가 염려스럽고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이 줄어드는 것이 우려됩니다.
"대단해(awesome)"라는 단어가 만능 어휘가 되어가는 것 처럼요.
이 단어는 아침 식사 베이컨에도 쓰이고
샤르트르 성당을 묘사하는 데도 쓰이죠.
당연히 생각의 범위도 좁아집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치명적입니다.
물론 이 얘기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죠.
1948년에 조지 오웰이 이미
그의 유명한 책 ''1984년"에서 경고했어요.
여러분도 당연히 아시죠?
책의 제목 "1984년"은
조지 오웰이 1984년도가
그 모든 불길한 일들이 일어나는 해라고 해서 제목을
붙인 것이 아니라
1984라는 숫자는
그 책이 쓰였던 1948년을 뒤집어 놓은 것 뿐 이라는 것을요.
여러분도 당연히 알고 계시죠?
어쨌든 오웰이 경고한 것은 빅 브라더 뿐만아니라
그 자신이 "뉴스픽(Newspeak)"이라 명명한 단어를 소개했습니다.
이것은 확장을 유도하는 말이 아닌
생각의 범위를 좁히는 단어라는 뜻입니다.
그가 썼듯이
"해마다 단어는 점점 줄어들고
의식의 범위도 조금씩 축소되어 간다."
뉴스픽은 빅 브라더가
대중을 조정하기 위해 쓰는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구 소련 시대에 그 곳에 살고 있다면
뉴스픽은 소설 속의 가상의 말이 아니라
일상의 현실입니다.
그 당시의 구호들 기억하세요?
"지배적인 발전의 변증법",
"되돌릴 수 없는 사회 경제적 변형"
"대중 욕구 만족의 극대화"
이런 것들이 그 당시 실제로 사용된 구호들이었어요.
오웰은 이런 구호들을
조립식 닭장의 구역에 비유했어요.
무더기로 겹치면서 아무렇게나 쌓을 수 있는 닭장의 각 구역들요.
말의 의미 따위는 신경도 안쓰죠.
과연 그 구호들이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함께 없어졌나요?
여러분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전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너무나 경악스럽게도 이전 공산당원으로서
조작된 구호를 반복하면서
"발전의 변증법" 같은 말을 되뇌이던 사람들이
유럽연합이 득세할 것을 보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새롭게 조작된 구호를 외치더군요.
"모든 사회 구성원을 포함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
여러분도 들어보셨죠?
저는 유럽 연합이 2차 대전 후 유럽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데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으며,
라트비아가 유럽 연합에 가입하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러나 이 조직은 뭔가 분명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 조직의 언어는 이미 뉴스픽과 같은, 어쩌면 그 보다 더 형편없는
공허한 구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웰은 몇 십년 전에 이 글을 썼죠?
그는 그 시대의 기계적 용어에 반발했습니다.
오늘날 상황은 더 심하지 않은가요?
경제 잡지 '포브스"가 1, 2년 전에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독자들에게 물어보았죠.
직장에서 가장 짜증나고 쓸데없는 말이 무엇이냐고요.
전례없는 반응들이 나왔지요.
많은 사람들이 사업적 용어가
실제 생각을 대체해버렸다고 말합니다.
손꼽을 만한 몇 가지 반응과 말을
들어보시겠어요?
"한계를 초월하다"; "지렛대 효과"; "핵심 역량"
"확장가능한"; "지속 가능한"; "바다를 끓이다" ...
"바다를 끓이다" 무슨 뜻이죠? 전 모르겠어요.
여러분도 직장에서 늘 듣는 짜증나는 단어나 문장이
있으신가요?
뉴스픽(새로운 말), 지브리쉬(횡설수설), 가블디국(이해하기 힘든 말)...
모든 분야에 이런 말들이 있지만
침투적 성격의 분야는 더 그렇죠.
저도 싫어하는 단어가 있어요.
사실 많습니다.
그중 특히 싫어하는 말이 있는데,
이유가 있어요.
몇 년전 전 학계를 잠시 떠나 NGO 경영에 들어섰죠.
학계 또한 이런 전문 용어들이 많죠.
어떤 때는 학계가 일부러 말을 모호하게 하는 것 같은데
그곳을 떠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세상에 뛰어든 것이 무척 기뻤어요.
NGO -- 즉, 비정부 단체 --
경영이잖아요.
어느 화장한 날
직원을 뽑기위한 면접을 했어요.
전 통상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의 강점은 무엇입니까? 또 약점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또 물었죠.
"이곳에서 이루려는 목표가 있나요?
어떻게 그것을 성취하시겠어요?"
첫 면접자는 "이 곳에서 저의 목표는
역량 강화입니다.
역량을 강화하는 방법은
힘을 강화하는 것이죠."
두번째 면접자는 "힘을 얻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스스로 힘을 강화해야합니다."
세번쩨 면접자 ... 글쎄요, 이쯤하죠. 무슨 말인지 아시죠?
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어요.
"좋아요, 다 좋아요."
힘을 기르는 것은 좋은 일이죠, 그런데 한번 얘기를 해보세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 개인이 힘을 얻게되는지를요.
그리고 그들이 힘이 생긴 순간이 언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힘을 강화한다는 당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이 방법이 맞다고 무엇으로 확신할 수 있죠?
답을 못하더군요. 왜일까요?
답을 하려면 실제로 생각을 해야하기 때문이에요.
미리 만들어진 말이 아니라요.
그래서 전 '뉴스픽' 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NGO-스픽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문제가 무엇이냐고요?
이런 용어 사용에 뭐가 문제냐고 물으시겠죠?
무슨 피해가 있냐고요?
이런 전문 용어들과 의미 없는 말을 쓰는
가장 큰 피해가 어떤 것이지 알기 위해서
다른 분야의 예를 들어볼께요.
재정 분야를 얘기해 봅시다.
여러분이 미국내 가장 큰 은행의 장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회의에서 그 은행의 한 직원이
제안을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 실제로 나온 말이에요:
"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현실화될 때 벨리 트란쉐(도산 출자분)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
그리고 "스프레드를 선매하고
신중한 움직임으로 보호 판매를 하다."
은행장으로서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전 제가 어떻게 할지 알아요. 제 분야가 아니라서
직원의 말을 하나도 못 알아 듣겠다고 말하고,
제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평범한 영어로 다시 설명해 달라고 할 겁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이 상황에서
그 직원의 제안은 받아들여졌으며
JP모건은 유례없는 손실을 겪었습니다.
그 직원은 거짓과 경쟁력 부재를 상투적이고 의미없는 단어들 속에
잘 숨기고 있었던 것이죠.
이런 뜻 모를 말과 전문 용어들이 쓰이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대부분의 사람들이 표현력이 떨어져서 "역량 강화"나 "지렛대 효과"
"정리 해고" 등의 말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무 할 말이 없을 때 주로 이런 말을 씁니다.
둘째로 실제 의미를 숨기기 위해 전문 용어를 사용합니다.
뭔가 은폐하려 하는 거죠.
만약 누군가가 전문 용어를 쓰지 않고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면
어쩌면 표현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얘기하는 주제에 대해 뭔가 확실하지 않을 때
전문적인 용어들은 유용한 지지대로 이용되며
뭔가 불편한 진실을 말하기 두려울 때
전문 용어는 진정제 역할을 하죠.
"죽을 운명의 환자의 결과" ...
이 말이 "환자가 죽었다" 라는 말보다 훨씬 부드럽죠?
당신이 외부인이 아니라 어떤 기득권 무리에 속해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의 공용어를 쓰는 것은 필수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면
-- 이미 만들어진 틀은 무시하고 -- 직접 생각하세요.
전문 용어와 지루한 말들이 유용한 대체품이에요.
다음에 여러분이 누군가가 "능력 개발"이니
"지속 가능한 집단적 효과", "원활한 활동 계획" 등의 말을 지껄이면
무슨 뜻인지 물어보세요.
말의 정의를 끝까지 물어보세요.
그들이 아무 말도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오웰은 이런 목소리 큰 사람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는 말이 뇌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고 목의 후두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을 경고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분 중에도 가족 중 누군가가
강제수용소로 보내진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나치 캠프도 있겠죠.
고상한 의상과 부드러운 손길은
위험을 무릅쓰고 소련 계급 사회에서 당신을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이나 나찌 정권의 가장 큰 부채는
문명화된 정확한 언어 표현의 증거입니다.
어떤 언어로든 문명화된 언어적 표현입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만연하는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언어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의 증거입니다.
알다시피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미
전체주의나 독재주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변질된 민주주의에 의해서
민주주의가 파괴될 것을 알았습니다.
민주주의는 문어(文語) 문화와 함께 진화했습니다.
문화의 창조물이죠.
이미지에 기반한 오늘날의 문화는 지성이 아니라
숨겨진 직감에 대한 갈증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사용되는 언어는 아테네인들이 사용하던 언어의
미약한 반영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민주주의는 타락하고 있습니다
너저분한 말과 너저분한 생각이 대중에 파고듭니다.
달변으로 유명한 정치가 바츨라프 하벨은
민중선동에 대한 그의 염려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미숙한 민주주의가 얼마나
인기영합주의에 취약한지도요.
그는 " 나는 평생 진부한 삶의 방식에 대해 비판했고
진부한 말들을 분석해 왔는데
지금 난 진부함에 기대고 싶은
직업적 유혹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바츨라프 하벨이 이렇게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요?
만약 표현잘하기로 유명한 한 정치가가
진부한 말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요.
대중적 이해를 위해 복잡한 내용을 단순화시키는 것은
민주주의을 위태롭게 하는 한 요소입니다.
단순한 진실을 화려한 언어를 사용해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하는 것 또한 위험합니다.
이 두 가지는 다른 얘기가 아닙니다.
사실 둘 다 진정한 뜻을 감추기 위한 것이거나,
의미없음을 숨기기 위함이죠.
둘다 조심하십시요.
이해가 안될 때는 주의를 기울여보세요. 당신 탓이 아닐 수도 있어요.
말의 정의와 설명을 요구하세요. 전문용어에 기죽지 마세요.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 없고,
오만하다고 생각하세요.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거나 뭔가 숨기려한다고 생각하세요.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세요.
그러면 당신의 생각 자체도 더 명료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민주주의도 더 나아질 것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이 무대나 다른 곳에서라도 나와서 얘기한다고 해서
그들이 반드시 '사고의 리더'라고는 생각지 마십시요.
주최측에서 그렇다고 얘기해도 말입니다.
'사고의 리더' 역시 제가 싫어하는 또 하나의
전문용어입니다. 왜냐구요?
만약 여기 있는 사람들이 '사고의 리더'라면,
청중들 즉 여러분은
'사고를 추종하는 자'가 되죠?
'사고를 추종하는 자"...
오웰이 한 얘기가 생각나지 않으세요?
당신의 벳지가 '사고의 추종자'라는 의미인가요?
아니길 바랍니다.
전 여러분들이 호기심많은 개인이길 원합니다.
독자적인 사고능력을 가진
목소리 큰 사람들에게 당하지 않는
진부한 얘기에 당하지 않는 개인이자,
자기 자신의 생각을 만들 수 있는 개인이요.
사람들이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또는 동의할 가치가 있든 없든 말이지요.
전 여러분이
리더들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 생각이 너무나 매혹적이고,
너무나 아름답다고 해도요.
또는 너무나 달콤한 약속이라 해도요.
그게 제가 믿고 싶은 겁니다.
그러나 누가 알아요?
이 또한 망상일지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