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p:
Highlight text to annotate it
X
최근 여러 안타까운 뉴스를 접하면서
자기애(愛),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타인을 사랑합시다.'라는 것은 하나의 가치관으로서,
소중한 것으로서 배워왔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내 몸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니
구태여 새롭게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에게는 이기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 하죠.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으니
그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또 조금 다른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말해 자기애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은,
뭔가 나르시시즘적인 느낌도 들고,
기분 나쁜 구석이 있으니까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울을 보며, "아아, 나는 내가 너무 좋아,
좀 방해하지 말아줄래." 라는 인간이 있다면
아, 제 이야기는 아니고요.
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럼 마음껏 거울이나 보고 계세요."라고
이야기해주고 싶겠죠.
그렇게 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인생에는 역시 괴로운 일이 생깁니다.
행복한 채로 일생이 끝난다면 좋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니가 싫다."거나,
"너 같은 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을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런 괴로운 상황 속에서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어딘가 인간은 역시 자기 자신을,
스스로의 책임을 다해,
스스로를 돌봐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너 같은 녀석은 싫다."는 말을
모두에게 들었을 때,
"그래, 실은 나도 내가 싫어요."
그런 말을 내뱉는 순간
우리들은 역시 그 순간 살아가는 것이
싫어지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인가
그런 필요성을 느낀 적이 있었고,
앞으로의 인생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다시 그런 식으로 언젠간 자신을,
스스로를 돌보겠다는 마음으로
사랑해야만 할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행복한 채로 인생이 끝난다면
다행이겠지만요.
저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줄곧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좋은 일을 해서
사람들에게 감사를 받거나,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었을 때는
'아아, 난 꽤 근본이 좋은 인간이 아닐까.'
약간 안심한 적도 있었고,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심하게 상처를 주거나,
화나게 만들었을 때는
스스로에게 굉장히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역시 본질적으로 어딘가
냉혹한 부분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하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실은
다른 누구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너무도 구석구석까지 세세히 알고 있기 때문이죠.
과거에 내가 해왔던 일들을 이것 저것 떠올려보며,
이런 일도 했고, 저런 일도 했고,
좋은 일도 했을지 모르겠지만
싫은 일도 많이 떠올려버리곤 합니다.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아아, 난 정말로 나를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뭔가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여러 모습의 나 자신,
나는 이 때의 나 자신을 꽤 좋아했던게 아닐까
이 때의 나는 싫었다고 생각한 자신을 떠올리며
그것을 먼저 전부
자신의 모습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실은 근본은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나는 본질적으로 역시 냉혹한 사람인게 아닐까
어떤 자신이 정말일까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 모든 것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봤습니다
그리고 어째서 한 사람인 '나'가
변하는 것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결국 대인관계 속에서
상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거겠죠.
고향집에 돌아가 고령의 할머님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의 저는
매우 편안하고 여유 있는 내가 되지만,
업무 상대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는
냉엄한 얼굴로 어려운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속이 뒤틀릴 정도로 싫은 사람 앞에서는
역시 제 말투도 그렇게 온화하진 못합니다
뭐, 가능한 그런 사람은 만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그 각각의 자신은 꽤나 다른 모습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전체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와 있을 때의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실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저 녀석과 있으면 왠지 내가 싫은 사람이 되어버리지만,
저 사람과 있을 때의 자신은
그렇게 나쁜 것 같지도 않고 꽤 좋아할 수 있다.
그런 일이 실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연애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어느 두 명의 여성이 있다고 합시다
양 쪽 모두에게 저는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한 쪽과 데이트를 했는데, 밥을 같이 먹고 있으니
굉장히 즐거워 재미있는 농담도 할 수 있고,
상대방의 반응도 좋으면
자연히 미소가 지어지죠.
그러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이렇게 늦은 시간이라 서둘러 막차에 오르며
'아, 오늘은 좋은 하루였어.'라는 생각이 드는 데이트였다고 해봅시다.
그리고 또 한 쪽은 호감을 가지곤 있지만
막상 데이트를 해보니
뭔가 재미있는 말도 잘 못하겠고
조금만 방심해도 썰렁한 분위기가 되어버려
나 자신이 한없이 한심한 인간 같은 느낌이 듭니다.
좀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있어볼까 생각했지만,
역시 1차에서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데이트를 마쳤습니다.
어느 쪽 여성과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냐고 묻는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전 첫 번째 여성과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하겠지요.
그건, 상대가 좋아서라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자신이 좋으니까,
그런 자신에게 즐거움을 느껴
그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그 정의 자체는 물론 틀림없는 것입니다만,
지금 여기에서 제가 덧붙이고 싶은 말은,
사랑이란 오히려
다른 사람 덕분에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저 사람 앞에서 나는 마음껏
여유로울 수 있고, 솔직해질 수 있어
여러 가지를 내보일 수 있다.
다른 사람 앞에선 결코 불가능한 일이라고.
불행하게도 인간의 관계에는 끝을 맞이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싸우고 헤어지는 경우가 있다면,
사별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잃는 슬픔은 물론 그 사람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그 사람과 포옹할 수 없고,
또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테지만,
한편으론 그 사람 앞에서만 살아올 수 있었던 자신을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외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렇게도 자유롭고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사람 앞에서뿐이었는데,
그렇게도 솔직해질 수 있었던건 그 사람 앞에서뿐이었는데,
그렇게 바보같이 굴고
시시한 행동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사람 앞에서뿐이었는데
그 사람이 사라지게 되면서
자신은 더 이상 그 좋아했던 자신의 모습을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
그것이 이별의 슬픔이 아닐까요.
반대의 경우에도 물론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하늘에 오를 듯 기쁘죠.
"얏호!"하고 소리치고 싶죠.
하지만 누군가에게
당신 덕분에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있다고 고백 받는다면,
혹은 나는 다른 누구와 있을 때보다도
당신과 있을 때의 자신을 좋아한다는 식으로
고백 받는다면
그건 뭔가 좀 더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 듭니다.
내 존재가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존재를
긍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뭔가
감동적인 기쁨을 느낍니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좋아하는 자신을 하나씩 찾아내면서
아마도 살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겠죠.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면
그 중에서 몇 십 퍼센트, 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사랑 받지 않으면 왠지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교실에서, 회사에서,
좋아하는 자신의 수를 세어간다면
그렇게 몇 십 개나 필요하진 않을지도 모릅니다.
두 개나 세 개, 이런 자신을 꽤 좋아한다고 느낄 수 있는 자신이
나 안에 있다면,
그것을 발판 삼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섯 개나 여섯 개나 된다면 벌써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교실 안에서 친구가 3명밖에 없다고 생각하는가,
3명이나 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사고방식의 차이입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울을 보며
"아, 난 내가 좋아."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 덕분에 자신을 사랑하고,
타자를 경유해 자신을 좋아할 수 있게 되는게 아닐까요.
아마도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도 없는 존재로서 말이죠.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