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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전쟁 게임은 제가 직접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와 동생 그리고 친구 몇몇이랑
몇 명이 함께 리놀륨 장판에 유성펜으로 가로와 세로가 각각 3km인 지도를 만들고, 강과 산, 다리가 있는 지형을 그렸죠
그런 식으로 놀았죠
80년대 말이 되자,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테트리스 같은 게임도 있었고요
'문명(Civilization)', '워로드(Warlords)', 그리고 최초의 전쟁 게임인 '듄 II(Dune II)' 같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도 나왔습니다
10대의 머릿속에 이 게임들이 모두 합쳐지면서 '뻥' 하고 터졌죠!
80년대 말, 그리고 90년대 초에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을 갖고 있던 모든
아이들이라면 자기만의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이미 출시된 비디오 게임을 바꾸고 싶었을 거예요
전 시드 마이어(Sid Meier)에게 편지를 썼던 기억도 납니다. '문명'에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어떤 점을 고쳐야 하는지 제 생각을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들 이해하시겠지만, '이게 아니야, 소용없어. 나만의 게임을 만들어야 해.' 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죠
학교 친구들, 동생 그리고 전 물리학과 수학 같은 과학을 더 좋아했어요
그런 성향이 결정을 내리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죠
처음 컴퓨터가 나오자, 우린 프로그램과 컴퓨터 공학에 반했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폭발물 제조를 위한 재료가 된 거죠
저희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고요
동생과 저는 각자 방이 있었는데, 침실을 한곳으로 합치고 나머지 방을 사무실로 만들었습니다
제 기억에, 그 방에 컴퓨터가 다섯 대가 있었어요
세 명이 서랍이며 가구들이 들어찬 3X4 크기 방에 U자 모양으로 자리를 배치했죠
이제부터가 정말 흥미로워요
유진(Eugene)이 자신의 집에 초대해서, 그와 동생이 만들고 있는 '아이언 에이지(Iron Age)' 게임을 보여줬습니다
턴 베이스 전략 게임으로, 순서가 되면 이메일로 연락을 주는 방식이었죠
요즘 많이 하는, 실시간 온라인 게임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아이언 에이지'는 1996년에 완성되고 출시되었습니다
저희는 이 게임을 몇십만 명, 잘 되면 백만 명은 할 줄 알았어요!
그러나 플레이어는 고작 여섯 명이었습니다
저와 제 동생, 그리고 게임을 함께 만든 미국인 한 명, 독일인 한 명 그리고 '표토르(Petr)'라는 러시아인 한 명이었죠
그때, 게임 개발자 중 한 명에게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가 그 사람을 상대로 게임을 했더라고요
제 게임 스타일이 적극적인데다가 새로 온 플레이어가 벌인 게임이었기 때문에, 게임을 만든 사람과 심지어 개발자의 흥미도 끌었던 거죠.
그는 자신을 소개한 후, 전투가 자동으로 종료되는 걸 막기 위해 제게 다음 순서를 그냥 넘어가 달라고 했습니다.
그 사이에 전투가 더 오래갈 수 있도록 코드를 다시 쓰겠다고요.
본래 게임 턴 수에 제한이 있었던 겁니다.
저와 빅터(Victor)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빅터를 상대로 게임을 했던 거죠.
저희 둘 사이에 "저녁 6시에 회의를 하고 회사를 세웁시다." 하는 식의 공식적인 모임은 없었습니다
게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고 오랜 시간에 걸쳐서 게임을 만들었죠
사실 그 과정이
오래 걸렸어요
그래서 '워게이밍(Wargaming)'에 정확한 창립기념일이 없는 겁니다
설립 연도는 우리가 "좋아, 그럼 이 일을 직업으로 해보자고." 라고 결심한 1998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심하면 내면적으로 전력을 다한다는 의미니까, 항상 갈등이 있었죠...
사실, 그때가 내면적인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해는 시작이기도 했고 제 개인 재정을 쏟아 부은 때이기도 했어요
부모님 도움도 받았죠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분야였고 잘 아는 사업도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리스크도 있었고 불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저희가 그 일을 시작한 나라는 게임 개발이라는 일이 매우 생소하기만 한 곳이었죠
워게이밍의 첫 프로젝트는 키슬리(Kislyi) 가족의 아파트와 당시 회사의 첫 프로그래머가 다니던 벨라루스 주립 대학교(Belarus State University)
기숙사에서 개발했습니다
새로운 워게이밍 직원의 업무는 아파트 11층의 두 건물 사이에 네트워크 케이블을 연결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죠
당시 소련의 호스텔들은 전기 접지에 문제가 많아서 네트워크 카드가 타버렸습니다!
정말 정말 웃기는 건, 당시가 봄이었는데요
봄에 네트워크 카드가 타는 일이 많았다는 거예요
회의를 하면 대화는 이런 식이었어요
빅터가 방으로 들어와 물었죠. "사샤(Sasha), '워게이밍(Wargaming)'이란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아? '워게이밍'이란 말의 의미를 아느냐고?"
그때 전 그 단어를 처음 들었어요
빅터는 제 마음에 드는지, 그런 게임 장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어요
흠, '워 게임'이라고 부르는 전쟁에 관한 게임 장르가 있죠
독일어로는 '크릭슈필레(Kriegspiele)'라고 해요
이 단어는 기사나 인터넷에 언급된 적이 있었어요
보드 게임에서 주로 사용했고요
워게이밍에서 우리는 전쟁에 관한 게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워게이밍이라는 이름은 매우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다른 몇 가지 후보 중에서 고른 이름인데
다른 것들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저는 15년 전에 대학을 다니고 있었어요
저는 중학교 3학년이었어요
저는 '플레이스테이션'용 군 전략 게임을 만들고 있었어요
저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요
저는 음향 엔지니어였어요
저는 대학교에 들어갔고요
저는 미국국립과학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 NRC)의 역사협회(Institute of history)에서 있었어요
저는 EA.com의 온라인부 부장이었어요
저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중이었고요
저는 대학교 4학년이었어요
저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고요
저는 광고 판매를 하고 있었죠
나는 컨설팅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경영 컨설팅 일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개발자였고요
저는 대학에 있었어요
저는 출시된 적이 없는 게임을 만들고 있었어요
저는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엉뚱한 족학을 공부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저는 학생이었어요
저는 가스 파워드 게임스(Gas Powered Games)를 설립 중이었죠
저는 버블릭스(Bubliks)를 사서 사람들을 꼬시고 있었죠
첫 번째 컴퓨터 게임인 '아이언 에이지(Iron Age)'를 출시해서 세상에서 단 여섯 명만 플레이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게임을 만들고 싶으면, 그 게임을 할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틈새시장으로 기존의 보드 게임을 선택했죠
전 세계의 수십, 수백, 아니 수천 명의 플레이어가 이 게임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이 게임은 빅터의 이상에 가장 가까웠죠. 그는 테이블에서 즐기는 미니어처 게임을 좋아했거든요
이것이 빅터가 하는 일 전부였죠
하지만 그의 취미는 별로 특이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테이블 미니 게임에 빠진 사람은 수십, 수백, 수천, 수만 명이나 되었으니까요
수많은 팬이 그 게임을 즐기며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고 일 년에 한두 번 모임을 하고 함께 게임을 하고 있었죠
저희는 게임 규칙에 관한 책자를 구해 머리를 맞댄 후, 자와 계산기를 들고 수많은 공식을 적어가며 연구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게임의 컴퓨터 버전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DBA 온라인을 시도하기 전에는 보드 게임에 관한 경험이 전혀 없었죠
저희는 모두 아직 학생이었고 공부를 많이 해야 했습니다
사실상 모든 걸 배워야 했죠
DBA 온라인을 통해 저희는 정말 전문적인 진짜 비디오 게임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약 15년 정도 되었고, 아니 그것보다 좀 덜 됬을 겁니다
게다가 아직도 사람들이 플레이하고 있죠!
당시 시대에는 컴퓨터 산업이 전반적으로 3D 기술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아직 2D인 턴 베이스 전략 게임은 고전 게임에 속했죠
저희는 이 턴 베이스 전략 게임 방식을 대중들에게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것이 지난번 게임과 달랐습니다. 새로운 사람들도 있었고, 모두가 더 전문화된 업무 분야가 있었습니다
프로그래머 몇 명, 아티스트 몇 명, 3D 모델러 한 명,
그리고 저처럼 하는 일을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사람 등으로 구성되었죠
저희는 모두 똑같이 큰 관심과 열의를 가지고 거의 모든 여가를 바치며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모여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힘으로 게임을 만들었어요
제가 아는 한 매시브 어썰트(Massive Assault)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비밀 동맹 시스템이었습니다
설령 모든 전선에서 패할지라도, 게임 끝에 비밀 동맹 한두 개를 만들어 두면,
적군이 승리를 직감하고 진지에서 뛰쳐나와 후방을 지키지 않고 내버려두었을 때
승리의 카드를 이용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정말 놀라운 결과가 되는 거죠
게임이 출시되자, 주요 게임 잡지에서 좋게 평가했고 전 세계의 턴 제 방식의 전략
게임 장르 팬들이 게임에 매료되었습니다
수많은 잡지에서 '매시브 어썰트'에 관한 소개를 했지만,
가장 기뻤던 순간은 '게임스팟(GameSpot)' 메인 페이지에 저희 게임이 소개되었을 때입니다
하루 동안 '게임스팟' 메인 페이지에 기사가 실려 있었죠
게임에 관한 평가가 최고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빅터와 저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게임에 관한 기사가 소개되었다는 의미는 저희 브랜드가 널리 알려진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매시브 어썰트'는 팬이 정말 많았습니다
워게이밍은 당연히 이 성공을 기반으로 계속해서 시리즈를 만들기로 했죠
'매시브 어썰트 네트워크'와 그 속편이자 확장팩인 '매시브 어썰트: 도미네이션(Massive Assault: Domination)'과 함께 나왔습니다
매시브 어썰트(Massive Assault)의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 시킨 것들이었어요
하지만 게임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게임은 흥미롭고 멋진 스토리라인과 새롭고 다양한 장점들로 빛났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저희가 가장 중대한 실수를 한 것 같았습니다
서양 플레이어와 러시아 플레이어의 차이, 그 큰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많은 미 대륙과 유럽 플레이어는 일반적으로 매우 복잡한 하드코어 게임을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잘 다루지 못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다른 수천 명의 사람처럼 아직도 '매시브 어썰트 네트워크'를 즐기십니다
저도 이 게임을 즐겁게 하고 있고요
하지만 각 매치가 너무 복잡해서 오래, 열심히 생각해야 하죠
저는 이 게임을 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너무 매달리게 되고 며칠씩 밖에도 안 나가게 될까 봐 말이에요
전 예전 게임 중에 DBA 온라인을 아직도 하죠
저는 이따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를 합니다
전 '프리즈너 오브 파워(Prisoner of Power)'와 '오퍼레이션 바그라치온(Operation Bagration)'을 가끔 즐깁니다
전 옛날에 제가 만든 게임을 하지는 않지만, 이따금 향수를 느끼곤 합니다
네, 전 '스타크래프트 II'를 합니다
'워플레인'만 빼면... (고개를 젓는다.)
볼텍스라는 무기를 보자고 '프렉처(Fracture)'를 시작했어요
전 '갤러틱 어썰트: 프리즈너 오브 파워(Galactic Assault: Prisoner of Power)'와 '오퍼레이션 바그라치온(Operation Bagration)'을 하고 싶어요
아니요, '탱크'하고 '워플레인'만 해요
작년에 '데미갓(Demigod)'을 아주 많이 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별로 없어요
전 제가 만든 모바일 게임을 플레이할 기기가 없어요
'월드 오브 탱크'는 제가 만든 그 어떤 게임보다 훨씬 나아요
비교한다는 자체가 이상할 정도죠
저희는 온라인 게임인 '매시브 어썰트 네트워크 2(Massive Assault Network 2)'를 만들었어요
그때 즈음에는 회사가 러시아 게임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진 상태였죠
그래서 러시아 회사들이 저희에게 관심을 보이고 개발 프로젝트를 맡겼어요
콜리야 카셀라포프(Kolya Katselapov)가 우리 사무실로 와서 말했죠
"혹시 '인해비티트 아일랜드(Inhabited Island)'읽어 본 사람 있나요?"
그 책을 읽은 유일한 사람이 바로 저였죠
"이 책을 가지고 턴 베이스 전략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요?"
전 생각했죠. '누워서 떡 먹기지!'
저희는 그 게임을 '아켈라(Akella)'라고 이름 짓고, "좋아요, 할게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콘셉트에 따라 새로운 턴 베이스 게임, '갤러틱 어썰트: 프리즈너 오브 파워(Galactic Assault: Prisoner of Power)'를 만들었죠
게임을 만드는 동안, 저희는 같은 장르의 다른 게임들에서 좋았던 점을 기억하려고 애썼어요
다시 말해, 가장 좋은 점을 취하고 거기에 저희만의 생각을 추가한 거죠
제 생각에 결과는 꽤 괜찮았던 것 같아요
언론에서도 게임을 매우 높게 평가했으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턴 베이스 전략 게임 방식을 사랑하는 건 저희였고, 별로 인기 있는 장르는 아니에요
이런 게임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든다는 장점이 있지만,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즐거움과 재미죠
그래서 이 장르를 벗어나 가장 많은 게이머가 사랑하는 RTS를 택하기로 했습니다
워게이밍이 '어라이즈 스튜디오(Arise studio)'를 만나지 않았다면 현재의 위치에 있지 못했을 겁니다
미하일 지베츠(Michael Jivetc)도 창립자 중 한 명이었죠
저희가 만든 가장 유명한 프로젝트는 '네 브레미야 딜리야 드라코노프(Ne Vremya Dlya Draconov)'였습니다
'루키야넨코(Lukyanenko)'라는 책을 바탕으로 만든 판타지 프로젝트였죠
이 게임은 1C 컴퍼니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코요티: 자콘 푸치니(Koyoty: Zakon Pustyni)'도 유명했죠
세계 종말 이후를 배경으로 했어요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 몇 개 있었고 팬들 사이에 인기도 있었죠. 그리고 저희 프로젝트도 꽤 인기가 있었어요
그때가 2007년 가을이었는데, 디렉터인 표도르(Fyodor)가 우리가 워게이밍 스튜디오(Wargaming studio)에 들어간다는 희소식을 알려줬어요
가장 큰 변화는 회사가 몇 배나 커지게 되었고,
사람들도 많아지고 제작 과정도 달라졌다는 점이었죠
기회도 더 많아졌어요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로워졌죠
저희는 힘을 합쳐 새 팀을 만들고 '오퍼레이션 바그라치온(Operation Bagration)'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었어요
저희는 '매시브 어썰트'와 '갤러틱 어썰트: 프리즈너 오브 파워'로 돈을 벌었고, 한계를 넘어 더 인기 있는
장르인 실시간 전략 장르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디자인 문서는 거의 여섯 번이나 고쳤죠
빅터가 할 때마다 퇴짜를 놓았어요
자신이 원하던 게 아니라고 말이죠
그렇게 '오퍼레이션 바그라치온'이 탄생했어요
그리고 저희는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기능을 추가하기로 했죠
대규모 전투죠
화면에서 수천 명의 군인과 전차,
수백 대의 비행기가 동시에 전투를 벌이는 '토털 워(Total War)'처럼 보이게 만들었어요
결과는 아주 멋졌죠!
이것이 바로 빅터 키슬르(Victor Kislyi)가 꿈꾸고 만들려 했던, 바로 그 지도 한 개 위에 수천 개가 움직이는 게임이었던 거죠
이 분야에서 저희는 새로운 개척자입니다
저희가 해냈고 자랑스러워 할만한 일이었어요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들에게도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놀라게 할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으니까요
저희는 카메라를 챙겨 지도 제작자와 함께 차를 타고 실제 전투가 있었던 장소로
가서 사진을 찍은 후 게임 안에 재현해냈어요
어떤 면에서 이 프로젝트는 상당히 애국주의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홍보할 때,
이 게임이 러시아인과 그 역사에 관한 내용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많은 참전 용사들에게 게임을 보여드리자, 그 일을 기억하고 잊지 않았다고 기뻐하셨죠
이 게임을 통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도 듣고 심지어 벨라루스 정부의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작은 방에서 전문가들에게 게임을 보여드렸고, 군 출신인 국방장관도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단점과 부정확한 부분에 관해 일일이 노트에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노트를 보고
"생각은 매우 좋지만, 부정확한 부분이 있어 홍보를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게임에서 본 부정확한 부분에 대해 하나씩 말씀하셨습니다
그중 하나가 우리 군을 파란색으로 표시하고 적군을 빨간색으로 표시한 거였어요
참전용사들이 이 부분에 관해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하셨죠
워게이밍과 일하면서 가장 놀란 점은 사람들의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과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깊이 관여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었어요
모두가 게임 출시를 단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게임이 최고가 되길 바랐죠!
저희 비디오 엔지니어인 디마 룻스코(Dima Lutsko)가 홍보용 비디오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RGDC에 가져가서 보여줬죠.
저희가 보기에 비디오가 매우 멋졌기 때문에, 채용 면접 때마다 볼륨을 최대로 높인 채
플라스마 TV로 이 비디오를 보여줬어요.
그리고 우리도 같이 시청하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유명 포털 AG인 '앱솔루트 게임스(Absolute Games)'에 처음 언급된 내용은 "정말 감동적인 게임이었어요. 이런 게임을 만들어줘서 고마워요!"였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우리가 잘했다는 것과 게임이 인기가 있겠구나 하는 것을요
'오퍼레이션 바그라치온' 이후, 회사는 세계적 규모의 프로젝트를 만들 준비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대형 제작사인 '스퀘어에닉스(Square-Enix)'도 이를
깨닫고 워게이밍에 그들 최초의 서구 중심 프로젝트 개발을 맡겼어요
'오더 오브 워(Order of War)'는 본래
프랑스를 독립시키고 나치 독일의 국경으로 진격한다는 내용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즉 서부전선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서양판 '오퍼레이션 바그라치온'이었던 거죠
모든 장소에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역사적 성당이나 교회를 배치하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하자 모든 지도에 각각 독특한 분위기가 생기기 시작했죠
가장 어려웠던 일은 오마하 상륙 작전용 지도를 디자인하는 거였어요
처음엔 이 시나리오가 너무 남용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전투는 정말 중요하므로 다시 게임에 배치하기로 했죠
이 임무를 확실히 하기 위해 단시간에 다른 지도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독특한 사물을 많이 배치해야 했습니다
저희는 '오더 오브 워' 게임의 엔진으로 사용할 장면 컷을 만들었어요
플레이어는 화살표로 3D 지도에서 3D 게임 엔진으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그 다큐멘터리 안팎을 오갈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할리우드식 장면 컷 같은 거였죠
게임은 정말 굉장했고, 게임을 발표한 회사도 굉장했지만, 수익은 내지 못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국제적인 수준의 게임을 만드는 법을 배웠고,
저희의 새로운 프로젝트인 '판타지 아레나(Fantasy Arenas)'를 만들 때 이 경험을 중점적으로 살렸죠
저희는 그저 판타지 프로젝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배경은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프로젝트의 비주얼 부분을 만들기 시작했죠
아티스트가 작업할 분량이 아주 많았어요
아티스트들은 수백 가지의 다른 개념을 시도했습니다
강철 갑옷과 화살을 만든 뒤에는 엘프나 오크 같은 생명체,
그리고 그 의상 및 기타 살아있는 것들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판타지 게임에 사용된 모델을 그냥 폐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월드 오브 탱크'의 첫 번째 비디오 예고편에 이들이 등장했으니까요
빅터 키슬리는 항상 피터 비츄코프(Petr Bityukov)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어느 날 둘의 만남에서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피터의 아파트에 다시 한 번 갔고 함께 점심을 먹었죠. 이때 이미 MMO 게임 엔진에 관한 실험을 한 상태였어요
엘프와 오크가 등장하는 게임이었죠.
이때 피터 비츄코프가 제게 말했죠
"이봐, 엘프와 오크가 정말 필요한 거야? '워크래프트(WarCraft)'하고 '리니지(LineAge)' 같은 게임이 많잖아
우리가 계획대로 하되, 주인공을 전차로 하면 어때?"
이제 와서야 하는 이야기지만 처음에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더랬죠
그 세번째 잔을 마시지 말걸 그랬어
하지만 우린 그 부분에 관해 얘길 나누었고 피터는 이렇게 말했죠
"준비된 팬들이 있다고. 전차와 전쟁의 역사를 사랑하는 팬들 말이야."
피터는 자신이 가진 수많은 책을 제게 보여줬어요
독특한 배경에서 실제 역사적인 전차를 가지고 게임을 한다는 아이디어는 '워해머(Warhammer)'의
또 다른 클론을 만드는 아이디어보다 더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저희가 왜 전차를 택했을까요?
전차는 '카운터 스트라이크(Counter-Strike)'의 좀 더 즐거운 버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사격수를 가장 좋아하죠
그러나 솔직히 그들 모두 문제가 있었습니다
팀에 진짜 빠른 반응 속도가 있는 플레이어가 있어야 고전적인 사격수 같은 역할을 하니까요
저희는 좀 더 정확하고 더 즐길 수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세르게이 부르카토프스키(Sergey Burkatovskiy)에게 민스크로 와서 게임 디자인 부서를 이끌어달라고 했습니다
사실 몇 주만 그렇게 할 심산이었죠. 그리고 직원들에게 알렸습니다
"자, 엘프와 오크에게 작별 인사를 하라고!
여기 전차에 관해 잘 아는 친구들이 있어
워크래프트와 경쟁하지 않고, 우린 전차에 관한 게임을 만들자고 이름은 나중에 생각하고
이상."
제가 프로젝트의 제일 초기 단계부터 거기 있지는 않았지만,
민스크에 있는 워게이밍 사무실이 역사적인 전쟁 게임을 만드는 걸 지루해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중얼거렸습니다. "또 전쟁이야. 연기가 난무하는... 엘프나 만들자고!"
사실, 저희를 제외하더라도 판타지 게임은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에 전차에 관한 게임을 만든 건 정말 잘한 일이었죠!
저희는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 시작했어요
이전에 오크나 엘프를 만들던 팀을 다시 작은 팀으로 나누어 전차 작업을 시작했죠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오퍼레이션 바그라치온'에서 '빅월드' 엔진으로
첫 모델을 가져온 건 작업을 시작한 지 2주 후였습니다.
이 전차는 0.0.0.1 버전 전차라 할 수 있죠.
그 순간 세르게이 부르카토프스키가 말했죠.
"자, 전혀 복잡할 거 없어요 모든 건 단순하게!
우리가 만드는 건 강렬한 전차 전투예요!
논의 끝."
그리고 저희가 해냈죠!
예전 워게이밍의 슬라바 마카로프(Slava Makarov), 세르게이 부르카토프스키, 피터 비티유코프, 마이클 "스톰" 지비에크(Michael "Storm" Jivetc)의
모든 생각은 빠르게 허가를 받았고 진행되었죠
모든 아이디어가 제대로 진행되었고 저희는 그 아이디어를 절대 바꾸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들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것은 게임업계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저희가 이전에 배급사들과 함께했던 경험들이 배급사들을
찾고 그들과 협력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희는 제작사를 차리기로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저희에겐 두 가지 업무가 있습니다. 플레이어의 관심을 끄는 일과 그 관심을 유지하는 일 말입니다.
솔직히, 그 일을 해내려면 많은 전문가와 수많은 부서가 필요합니다
가장 큰 부서는 마케팅부, 비즈니스 개발부, 배치부,
그리고 e스포츠 업무만 담당할 팀이지요
2010년 이전까지 저희는 일개 게임 개발업체라, 대부분 개발부에 있었고, 홍보와 마케팅 인원이 약간 있었죠
저희가 월드 오브 탱크 프로젝트의 출시를 준비하던 2010년이 되자, 운영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실 그게 뭔지도 몰랐습니다
"지원 전문가"라던가 "커뮤니티 관리자"는 단어만 들어봤고 전혀 그 역할을 알지 못했죠
하지만 그런 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출시 3개월 전에 서둘러 운영팀을 꾸렸습니다
프로젝트 초기, 즉 알파 테스트와 베타 테스트 중에 게임 플레이어는 극소수였습니다
다시 말해, 프로젝트가 출시되었을 때 테스터가 많지 않았다는 얘기죠
그러나 테스터들의 유대 관계는 매우 좋아서 마치 가족 같았습니다
월드 오브 탱크 개발 초기였던 이맘때쯤 첫 공개 행사가 열렸습니다
저희는 러시아 언론을 민스크로 초대했고 그게 첫 홍보 행사가 되었죠
그들에게 스탈린 라인을 보여주고 전차에 올라타게 한 후, 두두뜨끼(Dudutki)를 보여주었습니다
언론이 전혀 예상치 못한 행사였어요
2011년 이래, 회사는 거의 매년 50%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업계 최고죠
사실, 지난 몇 년간 워게이밍이 온라인
게임 시장의 리더 자리를 차지해왔다는 걸 의심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게임이 인기를 끌수록 경쟁력 있는 플레이어가 더 많아졌어요
그들이 점차 다른 팀과 클랜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관중도 생겼고 토너먼트에서 지속해서 플레이를 했습니다
저희는 그들을 지원했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토너먼트 횟수도 늘어났습니다
관람객과 팬도 생겼습니다
워게이밍 리그와 RU 지역만 약 1,000개의 팀이 생겼죠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10,000개가 넘는 팀이 생겼습니다!
빅터, 우리가 해냈어! 그래!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정말 기뻤어요
당연하죠
정말 놀랐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전 놀라지 않았어요
제 일 같았죠!
너무 놀라서 아무 말이나 막 했을 거예요!
성공할 줄 알았다니까요!
저희 예상보다 훨씬 크게 터졌죠
세상에나!
그럴만했어요
10년 아니 12년을 플레이어를 위해 노력했으니까요.
아직도 놀란 마음이 진정이 안 될 때가 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죠
전차 게임이 성공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게임을 하기 시작하고 6천 번 정도 전투를 한 후에야 왜 성공적인지 깨달았죠
월드 오브 탱크의 성공으로 개발에 더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전 세계에 워게이밍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죠
현재 200개가 넘는 국가에서 월드 오브 탱크를 즐기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지역별 사무실에서 플레이어의 편의를 위해 계속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2010년 맨 처음 러시아에서 게임을
출시했고 러시아 서버에서 게임을 테스트한 뒤, 곧 게임을 다른 지역에도 보급했습니다
'월드 오브 탱크'는 2011년 초 유럽에서 매우 인기를 끌었고, 민스크 본사에서 게임을 지원했었죠.
그리고 2011년 11월에 유럽 사무소를 설립했어요
약 3년 전, 북미에서 월드 오브 탱크를 출시할 때 저도 그 일에 참여했습니다
중국에서는 2011년 3월에 출시되었고 아시아는 2012년 4월, 그리고 한국은 2012년 12월에 출시되었습니다
일본에는 아직 탱크가 소개되지 않았죠
월드 오브 탱크가 러시아에서 얼마 동안 존재하고 얼마나 게임계를 장악하든, 항상 중요한 일과 날짜, 행사가 있기 마련입니다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날짜는 당연히 유럽에서 처음 운영을 개시한 2011년 11월이었습니다
그리고 약 3년 전, '월드 오브 탱크'를 소개한 일이 가장 큰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 커뮤니티가 게임스컴에 갔습니다.
게임스컴은 항상 멋진 행사인 것 같아요
아주 아주 크고 성공적이었죠
E3도 저희에게 매우 큰 행사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e스포츠에 종목으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여러 언어로 번역된 것도 사실 저희에게 지금까지 가장 큰일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까지 더 중요한 행사는 여전히 출시 날짜입니다
그러나 게임스컴은 정말 특별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북미 지역 플레이어의 독특한 점이 뭔지 아세요?
게임에 관한 기대치가 매우 높다는 겁니다
그리고 선택권도 매우 다양하죠
러시아 플레이어의 특징은 게임을 사랑한다는 겁니다
그들은 활발하게 게임을 하고 매우 몰입하죠
그래서 저희가 더 좋은 방향으로 게임을 개발하도록 노력하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용자들을 위해 좋은 길을 찾게 하죠
일본 플레이어는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고 거기에 매우 몰입합니다
저희 지역 플레이어는 '월드 오브 탱크'에 대해 매우 열정적이에요
'월드 오브 탱크'를 사랑하고 서로 경쟁하는 걸 무척 좋아하죠
'월드 오브 탱크'는 7개 국어로 서비스 중입니다
총 17개국에서 이용하고 있죠
플레이어 중에는 독일인도 있고 프랑스인도 있고 체코인도 있고 폴란드인도 있습니다
워게이밍의 거대한 커뮤니티는 상당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플레이어의 폭이 상당히 넓죠
한국 플레이어들은 전 세계 플레이어 중 가장 경쟁을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일 겁니다
저희는 전 세계 e스포츠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월드 오브 탱크'에서는 아직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 않지만, 곧 '월드 오브 탱크 리그'를 장악하리라 믿습니다
이 프로젝트 외에 저희 플레이어들은 다른 프로젝트 개발에도 대단히 관심이 있습니다
'월드 오브 워플레인'과 '월드 오브 워쉽'이죠
차기 개발작에 대한 관심이 정말 대단합니다
저희 지역의 모든 사람이 워게이밍의 다음 프로젝트에 관해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월드 오브 워플레인'이 어떤 모습으로 소개될지 정말 궁금해하고 있죠
플레이어들은 '월드 오브 워쉽'에 쏙 빠져서 빨리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어해요
아시아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시아 팬들은
'월드 오브 워플레인'이나 '월드 오브 워쉽'에 더 관심이 많을 거예요
비행기와 전함 전투가 주로 태평양에서 발발했으니
워게이밍의 다음 게임에 아시아 플레이어들의 관심이 더 많은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플레이어와 커뮤니티 모두 월드 오브 탱크의 새로운 개발에 상당히 기대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당연하겠죠
새로운 버전인 Xbox 360 에디션을 기다리는 건 당연해요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도 상당히 기다리고 계시죠
독일은 전 세계적으로 브라우저 게임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라, '월드 오브 탱크 제너럴'도 상당히 인기를 끌 것 같습니다
다들 전차를 우상으로 생각하고 계시잖아요
비행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사실, 전함도 마찬가지죠
이런 관점으로 워게이밍은 전 세계에 15개의 지역 사무소를 만들었습니다.
전부 제품 홍보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고,
일부 부서는 새 게임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페르샤 스튜디오(Persha Studia)는 2000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서양 회사들의 아트 외주업체로 시작했죠
그러나 열심히 노력해서 5년 뒤엔 더 중요한 업무를 맡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워게이밍과 일하기 전까지 주요 제작사들의 Wii, DS, PC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죠
저희의 새 고객은 벨라루스 회사로, 워게이밍이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가진 회사였죠
그들은 저희에게 '월드 오브 워플레인'의 시제품을 만들라는 임무를 주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시제품을 처음 내놓았을 때가 2011년 5월이었습니다
저희에 대한 워게이밍의 신뢰가 커지면서 알파 버전의 시제품을 만들라는 또 다른 임무가 맡겨졌습니다
처음부터 게임의 완벽한 버전이 마음속에 그려진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처음 이곳 키예프에서 워플레인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게임에 관한 주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전투기의 강렬한 전투!"라는 간단한 몇 단어로 압축되어 있었죠
레스타 스튜디오(Lesta Studio)는 1991년에 설립되었고 일찍 부터 비디오 제작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2000년, 레스타 스튜디오는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레스타 스튜디오는 PC와 콘솔용 전략과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첫 MMO 게임을 출시했죠
그 후, 워게이밍이 이 회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레스타 스튜디오와의 첫 대화가 기억나는군요
빅터, 슬라바 마카로프, 베로니카 레페카가 우리 사무실로 왔었죠
제 기억에 30명이 모두 스튜디오의 한 사무실에 모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들었죠. "좋아요, 모두 한번 시작해 봅시다!"
레스타 스튜디오는 우선 게임 개발 경험이 많고, 제2차 세계대전의 해상전에 관한 게임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월드 오브 워쉽'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경험, 특히 전함에 관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함은 구조가 정말 복잡 한데, 그 구조를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월드 오브 워쉽'과 비슷한 부류의 다른 게임을 비교해보면,
팀워크와 플레이어 간의 협동을 중시했다는 가장 큰 차이점을 알게 되실 겁니다.
몇 년 전, 저희 재정 사정이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업 발전의 흐름을 읽고,
훈련된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모든 경향을 찾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게임을 모바일 기기로 옮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DAVA 스튜디오는 2008년에 설립되었고 처음부터 저희 워게이밍과 알던 사이였습니다
회사의 간부 중 하나가 저희 워게이밍에서 일하던 직원이었으니까요
DAVA는 '월드 오브 탱크'가 아직 출시되진 않아서 회사가 그닥 큰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던 때부터 함께 일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2011년 워게이밍 가족이 되었죠
'월드 오브 탱크 블리츠' 프로젝트는 본래 저희가 의도한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 저희는 다른 작은 프로젝트 몇 개를 만들려고 했었죠
블리츠에 관한 아이디어는 매니저인 앤드류 카르피유크(Andrew Karpyuk), 비탈리 보로도프스키(Vitaly Borodovskiy), 스테판 드로츠드(Stepan Drozd), 알렉세이 프로신(Alexei Prosin)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저희는 지금까지도 이 게임의 잠재력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희가 깊이 있고 역동적인 PC 게임을 모바일 플랫폼에 옮겨놓은 방법에 대해서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수천만 개의 기기가 저희 게임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죠
저희는 진지한 게임 회사로 전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플레이어의 목소리를 모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국 플레이어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수많은 이용자가 게임에 열광하게 하려면 콘솔 분야를 정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Xbox는 그 첫 단계입니다. '월드 오브 탱크' Xbox 360 에디션 말이죠
데이 1 스튜디오(Day 1 Studios)는 1997년에 설립되었고 2001년 기업주가 바뀌면서부터 이 이름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첫 프로젝트였던 '맥어썰트(Mech Assault)'는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게임은 상당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 기록이 있어 Xbox 라이브 서비스를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데이 1 스튜디오는 그 후 몇 개의 게임을 더 출시했고, 2012년 워게이밍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워게이밍에 들어온 것은 정말 적절한 기회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만든 게임도 많이 비슷했고 경험도 많았으니까요
주요 차이점은 저희가 공상 과학 게임 작업을 했고 20세기 중반 전차에 관해
상당히 사실적으로 만들었고 모든 전차가 매우 사실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게 약간의 차이였죠
그러나 기본 기술과 직원들의 작업이 비슷해서 전차 작업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또 다른 차이는 워게이밍의 규모였습니다
워게이밍은 국제적인 기업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함께 어울리고 많은
것을 배우기를 좋아했고 실제로 기술적 관점에서 저희 직원이 한 작업이 워게이밍 내의
다른 스튜디오에서 실제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죠
워게이밍과 일하는 데 있어서 가장 편안한 점은 그들이 게임 개발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이었어요
새로운 플랫폼은 당연히 몇 가지 측면에서 게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어떤 식으로 운용되는지 다시 생각해야 했어요
두 번째로 완전히 다른 부분은 조종부분입니다
이 외에 큰 문제는 별로 없었습니다
저희는 종종 PC가 나을까, Xbox 360이 나을까 생각합니다
전 여러분이 어떤 기계로 플레이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지에 따라 결정의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죠
대부분 게임은 시드니에서 개발한 '빅월드(BigWorld)'라는 게임 엔진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 호주 스튜디오의 역사는 2000년에 시작되었죠
빅월드는 처음부터 MMO 시장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중국 스튜디오들이 여러 판타지 게임에 이 엔진을 이용했습니다
워게이밍과 협력하면서 빅월드는 새로운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죠
그럼요, 최근에 워게이밍 팀에 합류하게 되어 정말 기뻐요
매일 성장하는 만큼 더 큰 가족이 된 거죠
저희 기술과 전문성으로 팀을 계속 지원하고 있어요
워게이밍과 새로운 시작에서 정말 기쁜 점은 게임에 관해 긴밀한 작업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특허관련 문제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들끼리 게임을 만들고 우리는 소프트웨어만 작성했죠
그러나 이제 저희가 워게이밍에 합류한 이상, 각 팀과 긴밀하게 작업할
수 있고 저희 엔지니어가 키예프, 상트페테르부르크, 민스크로 가서 현장에서 사람들과 매우 긴밀하게 일할 수 있습니다
최종 제품이 실제 게임과 훨씬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도 신나고, 이 환상적인 게임의 일부로서
더 많은 공헌을 한 듯한 느낌도 좋고, 그 밖에도 장점이 아주 많죠
'월드 오브 탱크 제너럴'의 기본은 바이텍스(Bytex)가 만들었지만,
이 프로젝트는 워게이밍 키예프 지사로 완전히 옮겨져 전혀 다른 게임이 되었습니다
얼마 후, 민스크 사무실 팀이 합류하고 현재 게임은 두 개 도시에서 동시에 개발되고 있습니다
'월드 오브 탱크'의 성공이 확실해졌을 때, 저희는 거대한 전차들이
어떻게 해서든 서로 파괴하는 15대 15의 게임이 되는 걸로 끝날 수도 있는 리스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희 다수는 수집형 카드 게임을 즐기고 있었고, 당시 포털에 업로드 할 만한 멋진 전차 삽화를 몇개인가 그려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잠시 생각한 후 결정했죠 "안될 건 뭐야? 브라우저로 즐길 수 있는 카드게임을 만들어보지 뭐!"
크리스 테일러(Chris Taylor)는 어린 시절부터 게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디스팅티브 소프트웨어 스튜디오(Distictive Software studio)에서 직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21살에 이 업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의 첫 번째 게임은 '하드볼 II(Hardball II)'였습니다
그는 다음 프로젝트인 '테스트 드라이브 II(Test Drive II)'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서 팀이 계획대로 일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크리스의 경력은 계속 성장했습니다
처음엔 EA에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일하는 내내 뭔가 날려버리는 이야기만 했죠
미국에 와서 휴멍거스 엔터테인먼트(Humongous Entertainment)에 들어가 론 길버트(Ron Gilbert)에서 일할 때도 같은 일을 했어요
'토탈 어나일레이션(Total Annihilation)'은 뭔가를 날려버리는 이야기였어요
게임 이름의 의미도 바로 그거죠
'토탈 어나일레이션'이 시장을 강타했고 내 경력을 계속 쌓아나가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려면 회사를 열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실해졌어요
그래서 1997년 10월에서 11월 사이에 회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죠
'가스 파워드 게임'의 게임은 성공적이었고 흥미로운 부분이 차고 넘쳤어요
그러나 게임 시장은 계속 변화했죠
모두가 워게이밍처럼 새로운 변화를 읽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워게이밍은 게임에 관한 매우 특별한 접근과 자세를 보였고 고객,
즉 게이머를 존중하고 깊은 관심을 보였어요
마지막으로, '가스 파워드 게임'이 워게이밍에 합류하기로 했고, 새로운 개발 신화를 터뜨렸죠
회사가 크다는 자체도 모험이었어요!
전 세계적으로 사무실이 15곳이나 있습니다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었죠!
그래도 가족 같으니까요!
저희는 무료이면서 워게이밍에 딱 맞는 새 게임에 관해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전차에 관해 얘기도 들어보고 전차를 플레이해봤죠
아마 '월드 오브 워플레인'을 플레이하고 있을 수도 있고요
워쉽도 곧 출시됩니다
시리즈에 포함될 또 다른 게임도 준비 중이고요
하지만 아직 그 내용은 기밀입니다
대단한 게임이 될 거라는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아마 사상 최고의 게임이 될 겁니다
전 세계 워게이밍 가족이 모두 이 게임을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있으니까요